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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 Jan 17. 2020

바다에서 겨울을 밟다

- 그냥, 제주살아요 - 제주 겨울 바다는


“겨울 바다에 가보았지/미지의 새/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끄떡이며 겨울바다에 섰었네…’(김남조 ‘겨울바다’)


- 겨울바다에 가본 적이 있는가.

제주의 겨울은 바다에서 온다. 벌써 절반 이상 은백에 쌓인 한라산을 저만치 내다보며, 겨울은 그렇게 바다를 밟고 온다.

제주의 겨울바다는 손을 내밀면 뻗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어 더 좋다. 모성과 위안으로써의 바다는 가까울수록 더 정겨운 법이다.

다른 계절의 바다가 ‘낭만의 모습’에 가깝다면, 겨울 바닷가에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바다에는 ‘모성’의 느낌이 더 진하게 담겨있다.

‘흡착흡착’ 짠물을 들이키고 속울음 울면서도 스스로를 보듬으며 출렁이던 목선의 늑골은 영락없이 천년만년 살 것만 같던 어머니의 선 고운 뒷모습을 닮았다.


-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늘 기다려주는 바다는, 그것도 겨울에 만나는 바다는 여름보다 한층 맑은 푸름으로 자신을 알린다.

여름 화려했던 해변의 환영이 사라진 곳에 갈매기 떼와 찬바람 치는 파도가 빈자릴 메우고 있는 바다에 코끝이 찡해진다.

그 기세에 밀려 한두걸음 뒷걸음질 친다해도 이내 두 팔을 벌리고 행여 콧등이 갈라질까 연신 킁킁 거리게 만드는 거센 바람을 맞아야 오히려 후련하다.

바람이 거셀수록 겨울바다다운 법. 가슴앓이를 풀 마음의 준비와 동행이 준비됐다면 바다로 갈 일이다.

바람이 거셀수록  겨울바다다운 . 마음 맞는 동행이 없다면 까짓  혼자라면 어떠랴.  막힌 현실, 답답한 일상 아니던가. 아린 가슴을 씻고 깨끗하게 마음까지 비우는 데는 겨울바다가 제일이다.


- 어느새 눈앞에 선 겨울바다는 부서지는 파도와 기억날 듯 말 듯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세상에서 혼자 떨어져 나온 듯 주저앉아 큰소리로 엉엉 운다해도 이 바다는 하얀 포말과 잡음하나 없이 깨끗한 파도소리로 감싸안아 줄듯하다.

때로는 사박사박, 또 때로는 차락차락 쉬엄쉬엄 발을 떼놓으며 그렇게 겨울을 밟는다. 사시나무 떨 듯 떨게 하는 추위만 기억하는 공허한 겨울이 아니다. 함께 한 사람의 손을 잡고 걸으면 춥지 않음을, 추운 겨울 우리의 은신처는 아랫목 위 더운 이불 속이 아니라 그의 훈훈한 품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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