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미 Oct 23. 2022

불편함 이유로 하나 둘 사라진 섬의 '모세혈관'

제주 길에서 묻다 : 첫 길. 지도에서 더듬은 제주의 옛길 1

파리시 15분 도시 파리시청 홈페이지 15분 도시 일러스트 인용 정리

# 그래서, 어느 만큼 걸어봤어

‘15분 도시’라는 말을 따라 이리저리 자료를 뒤져본다.

‘15분 도시’는 근거리 서비스를 기반으로 동네 주민들이 함께 친자연적 생활환경을 만들며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도시다. 이 개념은 모든 도시 거주자가 집에서 도보로 15분이 걸리는 내에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서비스들을 충족할 수 있는 다핵화된 도시를 연상케 한다.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은 중요한 기준이다. 신도시나 전원도시를 만들 때 도시계획의 핵심적인 기준으로 적용됐지만 도시화 심화로 인구와 건물의 밀도가 높아지거나 반대로 거주 인구가 줄어드는 읍면에서는 ‘근접성’에 대한 해석부터 달라진다.

현재 주요 대도시들이 참여하는 국제모임인 C40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자연친화적인 도시환경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근접성을 강조하고 있다. 파리의 ‘15분 도시’는 그러한 시도들 중의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지역밀착형 생활 SOC’구축 사업과 밀접하다. 주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서 생태가 갖는 근본적인 가치나 자연친화적 환경이 주는 이점을 신경 써 고려하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앞으로 ‘15분 도시’구상에 있어 장애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15분 도시’는 이른바 혁신적인 개념이다. 집에서부터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 유아원, 병원, 상점, 학교, 공원 등을 이용하면서 일상 활동을 할  수 있는 ‘집에서 가까운 도시(city of proxi mities)’를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경제 그리고 감정 비용이 상당하리라는 것을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원도심 발자취 중 발췌

# 이제는 찾아도 없는 길


“소금 맨들앙 쇠에 실렁 이 마을 저 마을 댕기멍 보리도 바꽝 오곡, 조도 바꽝 오곡 했주. 구엄 땅이 물왓이란 비가 오민 농사도 잘 안 되곡 해부난 소금을 안 만들민 살질 못했주”(「제주민속유적) 295∼299쪽)

제주의 소금사를 더듬다 찾아낸 사실 안에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이 마을 저 마을 댕기멍’. 당시 구엄 돌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알이 굵고 양질어서 임금에게 진상됐다고도 한다.

하지만 열악했던 판로 때문에 섬 안에서도 그 소금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은 제한적이었다. 한번에 30~40㎏나 되는 소금을 지고 하루에 다녀올 수 있는 거리. 구엄에서 수산·장전·소길·유수암까지 18㎞ 남짓을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등짐을 지고 걸어갔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소금 쯤이야 가까운 마트를 찾으면 된다. 클릭 한번에 배달도 된다. 만약 옛날처럼 직접 만든 소금을 팔아야 하는 사정이라면 차 키를 챙기거나 옮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그런데 누가 걸어? 아니 우리는 걸어야 한다. 그 ‘옛’길을 만나기 위해선.       

‘옛’길을 찾아서..하고 거창하게 말은 꺼냈지만 설레는 만큼 막막하다.    

기억에서 찾아낸 길이다. 지금은 기억에만 있는 길이다. 말인즉슨 지금은 없어졌거나 없을 수도 있는 길이다.

기억이라는 통로가 있어서 다행이다. 더듬어 길을 통해서 만나고 소통하며 필요한 물건이나 문화를 교역했고 정보를 나눴다는 걸 유추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흐르며 세상이 변했듯, 길도 바뀌었다. 오랜 세월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지만 때로는 불편함을 이유로, 또 때로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외면받고 잊힌 길도 있다.

이런 잊힌 길들은 그러나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상징하는 글자 ‘옛’을 보태 오늘을 살고 있다.

옛길이라고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사실 어딘지 어색한 느낌들이 앞선다. 다만 낯선 길을 헤매는 즐거움, 설렘은 준비된 것이 아니어서 더 특별하다.

         

제주군읍지 중 제주
대동여지도 중 제주

# 지도 속 제주 그리고 길     


조선 전기에 제작된 지도 중 중국과 한반도 속에 제주도가 그려진 지도는 4점에 불과하다. 1567년 제작된 순수 조선 전도(全圖)인 ‘조선방역지도(朝鮮邦域之圖)’에는 제주도의 모양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제주 지도는 제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조선 후기에 들어 그려지기 시작했다.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1년여에 걸쳐 제주도 곳곳을 순력(지역책임자가 관내 각 고을의 민정을 시찰)하며 화공 김남길을 시켜 그리게 한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의 ‘한라장촉(漢拏壯矚)’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제주도 지도다.

뒤이어 1709년 제작된 ‘탐라지도병서(耽羅地圖幷序)’는 현존하는 제주전도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지도의 위·아랫면에 지도에서 설명할 수 없는 통계자료와 지리적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한양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려진 이 지도는 남쪽이 지도의 윗부분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제주도의 군현지도는 대부분 탐라순력도나 탐라지도병서를 토대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목, 제주, 탐라전도 등의 군현도(郡縣圖)와 호남전도(湖南全圖)와 해동지도(海東地圖), 팔도지도(八道地圖) 등으로 이름 붙여진 도별지도(道別地圖)의 부분도로 그려진 제주 지도는 내용이 비슷하고, 채식 기법을 사용한 것도 있다.

서양 지도에도 ‘제주도’를 찾을 수 있다. 17세기 이후 제주도는 ‘퀠파트(Quelpart)’라는 이름으로 서양에 알려졌다. 여기에는 네덜란드 상인 하멜의 영향이 크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소속 퀠파트 브 브락호가 1642년께 일본과의 무역을 위해 항해를 하다 제주도를 발견하고 이를 회사에 보고하면서 ‘퀠파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학자들 중에는 가파도라는 지명과 연관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 길 위에서 시간을 더듬다     


지금의 길과 비교해 보면 옛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하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며 노력했던 흔적이 보인다. 긴 세월 동안 자신을 다져가며 사람과 물품을 실어 나르던 길은 아직도 그대로다.

변한 건 없다. 아니 있다. 자로 그려놓은 듯 쭉 뻗은 차들의 길, 그 양 옆으로 발끝만 얹어놓은 사람의 길들이 생기면서 슬쩍 역할을 내줬다.

하지만 그 길에는 여전히 시간이 흐른다. 사람 사는 냄새도 그대로다. 오히려 번잡스럽지 않고 고즈넉해 발을 디딜 때마다 신바람이 난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두런두런 소리가 들린다. 발밑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다. 그게 어떻게, 왜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툭.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잘 알고 싶다는 욕심에 목이 탄다. 땅 위에서 갈라지고 합쳐지는 산과 물의 속성을 따라 만들어지는 크고 작은 길 위에서 우리네 삶이 어떻게 연결되고 형성되어 왔던가.

갈증을 핑계로 접지선이 닳도록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던 지도가 손을 잡아끈다. 못 이기는 척 길을 나선다. 내가 선택한 것은 ‘제주읍성 지도’(조선 18세기)와 21세기 제주시 지도다.

옛 지도를 보며 현대 도시를 걷는다. 오늘의 지도에서 옛길을 더듬는다. 속도는 낼 수 없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고 걷고 밀어낸 '길'에서 만나게 되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