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아기의 가치를 따져 보니
두 소년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살날이 많지 않은 노인과 아장아장 기어 다니는 아기 중에 누구의 삶이 더 가치 있는가? 하는 것이 논쟁 주제다.
소년 A의 주장이다.
“노인이 훨씬 가치 있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의 하루하루는 다른 이들의 하루보다 훨씬 가치가 있지 않은가.”
소년 B가 반박한다.
“아기가 훨씬 가치 있다. 노인은 이미 살 만큼 살았고, 이제 남은 삶은 잉여인생 아닌가. 그에 비해 아기는 앞으로 무한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소년 A가 다시 반박한다.
“잉여인생이라고? 노인이 살아온 지난 인생 노하우를 생각해보라. 지금의 인생은 잉여가 아니라 무한가치다. 노인의 혜안과 지혜를 활용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사회적 가치가 달라진다.”
소년 B도 지지 않는다.
“노인의 지혜라고? 수천 년 동안 같은 유형으로 살던 농경시대에는 노인의 지혜와 경험이 중요했지만 요즘처럼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시대에 과거의 경험, 과거의 지혜가 무슨 필요가 있나? 오히려 미래의 성장 동력인 아기의 가능성에 주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소년들의 논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들의 논쟁은 나이가 들면서도 계속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직업 일선에서 은퇴를 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가치에 대한 이들의 관점이 세월이 지나면서 바뀌었는지, 계속 유지되었는지 알 길은 없다. 따라서 훗날 두 친구가 ‘동일한 가치를 확인’하고 의기투합했는지, 끝없는 논쟁에 지쳐 등을 돌리고 말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지구에서도 이 같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그래서 대륙별로 합의를 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노인의 가치를 우위에 두고 유럽에서는 아기의 가치에 우위를 두었다. 아프리카인들은 ‘노인의 오랜 경험’을 높이 사고, 유럽인들은 ‘아기의 미래 가능성’을 높이 샀다는 것이다.
한 직장에서 비슷한 목적을 갖고 동고동락하던 동료가 곁을 떠나며 말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명확한 것 하나는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떠나는 이를 나무라거나 욕하지 말라.”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변화와 변신과 변절의 차이를.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일어난 변화와 변신과 변절에 대한 분석도 수백 년간 논쟁거리가 되고 있는데, 생활의 전선에서 일어나는 작은 관계들 속의 그것들을 어떻게 가름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하나는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의 가치다. 매일 아침마다 나를 바꿀 수는 없어도 길지 않은 기간 안에 바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그것, 시장의 원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