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냐, 커피냐

비가 오면 생각나는 친구

by 포포

시카고에 사는 젖소가 날마다 톡을 올린다. 젖소는 대학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창일이의 별명이다. 집에서 젖소를 키웠고 토실토실한 몸에 살집이 좋았다.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1등은 못하더라도 끈질기게 달려 3등 정도는 한 것 같다. 체격 좋고 온순한 성격까지 더하면 젖소란 별명이 맞춤이었다.


젖소가 미국으로 이민을 갈 때 우리는 "모국에 가는 기분이 어떠냐?"고 농담을 했다. 영어도 잘했고 허여멀건 얼굴과 곱슬머리도 미국과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생활에 금세 적응했다. 주립대를 나와 시카고 지역의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10여년에 한번씩 한국에 오곤 했다.


요즘 젖소가 올리는 톡은 우울한 내용들이다.

‘미국 생활 30년 동안 요즘처럼 불안했던 적이 없다.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 여기에서 나고 자란 우리 아이들이 불쌍하다.’

대개 이런 심경의 메시지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거의 매일이다. 듣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백인사회에 대한 분노가 전이돼 온다. 몇 가지 (친구에게 허락받지 않고) 그냥 옮겨 본다.


‘화이트 애들 클래스가 없어. 색깔 하얀게 뭔 타고난 복인 줄 알고사는 classless people.’

‘지도자를 잘 뽑아야지. 점점 더 정나미가 떨어진다. 아들 딸 세대가 걱정이야. 미국사람이면서 마국사람 취급 못받는 애들.’

‘어떤 한국사람들은 자기들이 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제법 있어. 하지만 백인들은 아시아인을 다 중국인으로 보지. 얼마나 웃픈 일이냐. 오늘따라 너희들이 더 보고 싶다.’

‘너희는 참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 코로나 대처하는 거 보면서 정말 부럽고 놀랍고 그래.’


미국에서 자리 잘 잡고 사는 친구가 늘 부러웠는데 그 친구가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을 위로하는 글을 보내왔다.

‘비 많이 와서 어쩌냐. 어떻게 해줄 도리는 없고, 저녁상에 막걸리에 파전 만들어 먹으며 아내와 고향 생각 중이다. 막걸리를 마시니 한국에 있는 기분이 든다.’


그 톡에 이렇게 답을 보냈다.

‘폭우 때문에 나갈 엄두는 안 나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그러곤 ㅋㅋ 웃었다. 미국인(시민권자이니 미국인이 맞다)은 막걸리를 마시고, 한국인은 커피를 마시는 일상. 불알친구로 자랄 때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는 ‘비가 오면 생각나는 사람’이 심수봉이 아니라 젖소가 될 것 같다. 친구, 이국에서 맘 고생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진짜 모국으로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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