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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ug 21. 2018

그런 것이 아니다

검정비닐봉지,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얼마 전 지인에게 책 한 권을 받았다.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란 책이다. 마루야마 겐지라는 일본 작가가 쓴 일종의 ‘시골 보고서’랄까, ‘귀농 귀촌 경고서’랄까 하는 책이다. 책 두께는 얇고 글 줄기는 쉬우며 내용은 옹골찼다. 보며 생각했다. 시골은 어쩜 이리 똑같을까. 일본이나 우리나, 중국이나 유럽이나… 아마 이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한 편집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중간 제목 몇 개만 옮긴다.

    

-풍경이 아름답다는 건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다

-지쳐 있을 때 결단하지 마라

-외로움 피하려다 골병 든다

-자원봉사가 아니라 먼저 자신을 도와야 한다

-공기보다 더 중요한 지역사람들의 기질

-(시골에서는) 심심하던 차에 당신이 등장한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이 제목들 밑의 본문은 어떤 내용일지. 그야말로 구체적이고 실감나는 사례들을 읽다 보면… 감탄을 거듭하다가 문득 섬뜩한 기운마저 느낀다. 급기야 ‘깡촌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는 제목 아래 그럴 수 있는 당위적 근거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귀농이니 귀촌이니 상상도 하기 싫은’ 절망감에 빠진다. 이토록 무서운 이야기를, 이처럼 현실적으로 들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촌을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즉, 함부로 귀농 귀촌을 논하지 말라는 경고를 던지는 것이다.    


 한국에서 20여 년을 머물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게 된 외국인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가장 싫었던 게 뭡니까? 예의 차리지 말고 진심으로요.”

떠나는 마당에 예의 차릴 게 뭐 있겠냐며 외국인은 답했다.

“검정 비닐봉지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해하는 한국인에게 그가 덧붙였다.

“한국인들은 왜 그리 검정 비닐봉지를 좋아하죠? 슈퍼에서도, 옷가게에서도, 철물점에서도, 전통시장에서도 뭐든지 다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줘요. 우리는 검정색 정말 싫어하거든요.”

검정 비닐봉지. 그것을 왜 쓰는지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20년을 한국에서 산 그가 왜 모르겠는가. 내용물 안 보이는 데 일단 좋고, 가장 싼값의 포장재이니까. 


하지만 그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했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지요.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파는 이나, 사는 이나 다 똑같다는… 진심 담은 비아냥이다.

우리는 횟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손님이 많아 신발을 들고 들어갔다. 검정 비닐봉지에 구두를 담아 상다리 옆에 놓고 식사를 했다. 그 검정 비닐봉지를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렇게 웃으며 슬픈 일들을 요사이 얼마나 많이 겪고 있는가. 생각하니 또 웃음이 나왔다.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예전에도 그랬으니까, 남들도 다 그러니까 하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요즘 일어나는 사태들은 ‘그러다 큰일 난다’는 알림장 같다. 이를 무시하면 정말 큰일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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