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깊은 맛
한 남자의 병간호를 할 때였다. 날은 더웠고 병원의 에어컨은 일정한 온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손부채로 살살 환자의 몸을 식혀 주고 있는데 그가 손을 내저으며 작고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그만. 바람도 아퍼…” 그때 처음 알았다. 바람도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잠시 명상하듯 멍 때리고 있다가 말했다.
“먹고 싶은 게 있다. 크림 웨하스, 크라운 웨하스.”
편의점에 내려가 크라운 웨하스와 누가바를 샀고, 병실로 올라가 함께 먹었다. 그는 웨하스를, 나는 누가바를. 과자 두 조각을 입 속에 넣은 그와 빙과를 입 속에 넣은 남자 둘이 맛을 음미하는 동안 더위는 조금 가라앉았다. 그가 말했다.
“크라운 웨하스가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어. 내 인생의 마지막 오르가슴 같다.”
그때 또 알았다. 과자 한 조각으로도 죽음의 공포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결국 세상을 떠났고 간병하던 이들은 종종 회상을 통해 그를 기억할 뿐이다.
여름, 더위가 찾아오고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스쳐갈 때면 두 느낌이 동시에 든다. 시원하다, 이 시원함이 왠지 미안하다. 그때 편의점이 보이면 웨하스와 누가바 하나씩을 산다. 봉지를 뜯으며 불과 며칠 후부터는 맛보지 못할 맛을 온몸에 집중해 음미하던 마지막 오르가슴을 되짚어본다.
그날이었던가, 며칠 후였던가. 멍 때리고 있던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몸에 좋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며칠 전 한 식품 품평회에서 원재료를 십분 활용한 천연과자와 음료 상품들을 맛보았다. 제조업체들이 끝없이 강조했다. 몸에 좋다. 질병 치료에 좋고, 다이어트에 좋고, 피부에 좋고, 좋고, 좋고, 좋다. 좋은 것이 너무 많아 죽어도 좋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렇다. 좋은 것이 넘쳐나 좋은 줄을 모르게 된다.
죽기 전에 꼭 맛보아야 할, 내 인생 최고의 맛은 무엇일까? 그것이 내 몸에 좋은 것은 아닐 게 분명하다. 굳이 헤아린다면, 누군가와 함께 먹으면서 입속에 오르가슴이 밀려들 때가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아직은 절박함을 모르니, 그저 여름은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