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알 바이어입니다
소 담당입니다. 돼지 담당입니다. 닭 담당입니다….
한 유통업체 축산 MD들과 조촐한 만남을 갖고 인사하던 자리. 출장에서 막 올라온 막내 바이어가 마지막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알 바이어입니다.”
‘알 바이어’는 얼굴도 매끄럽고 동글동글했다. 동그르르 굴러가는 목소리로 알 이야기를 알알이 들려주었다. 계란만 알이 아니라 메추리알, 오리알도 훌륭한 알이라는 걸 그로부터 들었다.
“알 시장이 생각보다 커서 수입육보다 매출이 높아요.”
유통의 자긍심은 매출에서 비롯된다는 걸 처음 깨달은 날이다. 하지만 그의 알 사랑은 단순한 시장 매출의 경계를 뛰어넘어 경제와 철학의 세계로 진입해 갔다.
“알은 단가 1원이 아니라 1전까지도 고민해야 하고 시시각각 신선도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섬세한 물류체계가 필요한 유통의 꽃이기도 합니다. 알은 식품의 공기 같은 것으로….”
그야말로 산소처럼 ‘시간, 사람, 생명, 돈’의 연관 관계를 맛있게 굴려 갔다.
“알 바이어의 연중 최고 시기가 언제인지 아세요?”
알 리 없음을 안다는 듯 스스로 답했다.
“당근 모르겠죠?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입니다.”
“아하, 말하자면 알계의 밸런타인데이로군요.”
장단을 맞춰 줬더니 그는 더욱 신바람을 냈다.
“초콜릿 유통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바빠요. 우린 선도를 조절해야 하니까. 신선식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하하하.”
식탁 위에 놓인 메추리알 껍질을 벗길 때 그에게 타박을 받기도 했다. 메추리알은 이렇게 까야 합니다… 또르르 알을 굴리며 하얗게 웃었다.
계산은 소 담당이 했다. 별말 없이 뚜벅뚜벅 걷는 모습이 믿음직한 소다웠다.
어떤 사람을 만나면 상상이 현실이 된다. 막연하고 혼란스러웠던 미래가 눈앞에 구체적으로 보이고 무엇부터 실천할지 가닥이 잡히기도 한다.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오묘한 일이 생길 듯한 기분이 들고 의기양양할 수 있도록 용기까지 주어진다면 금상첨화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동시에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