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언어가 다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 영어 어순과 반대인 우랄알타이어 계열 민족들이 조금 더 심하다는 게 통설이다. 서양문화에 정통한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세계의 언어가 한잔의 위스키라면” 하는 바람을 내비친 바 있다. 그 배경에도 얼마쯤은 일본인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잔의 위스키’ 같은 공유 언어가 없지는 않다. 대표적인 것이 악보와 숫자다. 세계 어디를 가도, 세계인 누구를 만나도 악보는 공통적으로 이해한다. 아라비아 숫자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달라도 숫자는 같이 사용하고, 단위가 달라도 숫자를 같이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활동이 수월해진다. 인간이 창조한 수많은 교류 수단 가운데 이처럼 훌륭한 기호들이 있을까?
며칠간 출장을 다녀왔다. 늘 느끼지만, 출장지에서는 아침식사가 중요하다. 전날의 피로 해소, 당일의 컨디션 조절, 모든 게 아침식사로부터 시작된다. 콩나물해장국으로 출발했던 아침이었다. 콩나물해장국의 고장 전주 출신이 콩나물의 비밀을 하나 흘려 주었다.
“콩나물은 해장국과 비빔밥의 핵심 재료예요. 콩나물의 크기가 항상 일정해야 하고, 그것을 삶아 만든 육수도 늘 같은 맛이어야 하죠. 전주콩나물해장국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그 콩나물에 있습니다. 음식은 눈에 보이는 재료보다 보이지 않는 재료가 더 중요해요.”
콩나물은 어려서부터 쉽게 접하고 가장 편하게 먹어 왔기 때문에 다소 무시받은 경향이 있다며 그는 아쉬워했다. 콩나물은 한국의 맛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식재료인데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불만이다. 그야말로 ‘심쿵’, 은근히 콩나물에게 미안해졌다.
“더구나 콩나물은 한국에서만 특별한 나물예요. 중국, 일본, 동남아 어디에서도 콩나물을 우리처럼 즐기진 않아요.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더욱 보기 어렵고요.”
콩나물 예찬은 계속됐다. 많은 채소 과일들이 햇빛과 흙, 물이라는 3대 조건에서 자라는데 유독 콩나물은 집안에서, 암흑에서, 흙도 없는 시루에서 ‘키워진’ 나물이다. 인위적으로 개발한 자연적 나물이랄까. 콩나물 많이 먹고 쑥쑥 자란 우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한국의 가정식 나물’을 재음미하라는 권고까지. 밥상 위 콩나물은 아침형 식재료로 풍부한 대화를 만들어 주었다.
모든 음식은 서민들로부터 출발하고,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은 값이 싸고 흔한 식재료로 시작된다. 밀가루에서 국수와 빵이 나왔고 명태에서 국과 탕, 조림, 구이들이 나왔다. 하지만 자연 환경에 영향을 받는 그것들은 시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기 일쑤다. 유일하게 콩나물은 시간과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늘 쉽게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나물이다.
콩나물대가리의 또 다른 이름 음표는 무엇인가? 인간이 만든 위대한 기호, 오선지 속 음표는 세상 모든 소리의 박자와 리듬을 담아낸다. 그 음표들, 콩나물대가리의 창시자에게 우리는 아무 비용도 주지 않는다. 인간의 정신에 가장 완벽한 영양을 주는 콩나물대가리인데도 말이다.
인간의 몸에 가장 완벽한 영양을 주는 식품은 콩으로 (현재까지는) 알려져 있다. 그 콩을 일상에 착 달라붙게 개발한 것이 대한민국 어머니들이 개발한 콩나물이다.
콩나물과 콩나물대가리는 생긴 것부터 기능성까지, 놀랍게 일치한다. 때문에 우리는 콩나물을 먹을 때 리드미컬하게 먹어야 한다. 몸이든 정신이든 리듬이 맞아야 에너지가 생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