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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l 16. 2021

당근에 대하여

당나라에서 온 뿌리채소

지난 주말 당근마켓을 통해 몇 가지 물건을 정리했다.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있던 긴 소파와 치자꽃 화분, 창고에 처박아두었던 TV 모니터 등을 돈 한푼 안 들이고(오히려 돈을 받고) 치운 것이다. 당근마켓이 없었다면? 플러스마이너스 계산을 해보니 10여만원 이상 차이가 났다. 이런 세상을 이제야 이용하게 됐다니, 입맛 다시며 신기해 했다. 


당근마켓으로 거래할 때는 약속 시간에 맞춰 물건을 내놓고 '그분'이 오실 때까지 어정거린다.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 아마추어이고 거래가격도 온라인으로 합의한 것이다 보니 은근 불안하기도 했는데 (아직 많은 거래를 해보진 않았지만) 하나같이 깔끔하고 쿨하게 거래됐다. 귀엽다고 할까, 소박하다고 할까.


몇 가지 거래 풍경을 간단 소개한다.    


#1

길쭉이 소파를 낑낑대며 내놓고 어떤 차가 올지 궁금해 하고 있는데 소형차 레이가 다가왔다. 설마... 하는 건 언제나 현실이 된다. 차에서 내리는 아주머니가 손짓을 하며 물었다. 당근.... 소파? 


네,네, 대답하면서 차와 소파를 (불안한 눈빛으로) 번갈아보았다. 헉! 차에서 두 명의 여자가 또 내린다. 열 살 남짓의 아이와 20대는 족히 넘어보이는 여자다.


- 아니, 이게 차에 실릴까 모르겠네요. 어찌어찌 싣는다 해도 세분이 다 타고 갈 수 없을 텐데요. 

- 뭐, 어떻게 되겠죠.


답이 쿨하다. 다 같이 달려들어 낑낑 소파를 차에 올렸지만 트렁크 뒷문이 닫힐 리 없다. 어떡하죠? 당황하는 판매자(나)를 다독이며 구매자(그분)가 답했다. 

- 어떻게 되겠죠. 그런데 저희가 봉투를 준비하지 못해서….


주머니에서 현금을 꺼내 두손으로 건네준다. 그리고 셋이 차에 꾸역꾸역 올라 몸들을 간신히 우겨넣는다.

(트렁크 문을 연 채 달린다는 게 도무지 불안해 결국 끈으로 트렁크를 고정시키는 작업을 함께 한 뒤 보냈다)


집까지 20분은 걸린다는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도착하는 대로 문자를 달라 했다. 그리고 한 시간쯤 후 문자가 왔다.

- 저희 잘 도착했습니다. 잘 쓸게요. 감사합니다. 


#2 

치자꽃 화분을 사간 고객은 동네 할아버지 같다. 화분 밑이 약간 깨진 걸 확인 못해 (화분을 내놓을 때 발견했다) 반값만 받겠다고 했더니, 할아버지의 반응이 그야말로 쿨했다.

- 그게 뭐 중요한가. 꽃이 중요하지

굳이 제값을 치르고는  ‘고맙다’며 인사하곤 떠났다. 얼떨결에 네네, 하고 답한 뒤 생각했다.

누가 고마운 거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뭘까? 왜들 이렇게 다 쿨할까? 별별 이유들을 혼자 떠올려봤다.

가격에 만족해서? 물건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 않아서? 어차피 서로 장사꾼이 아닌 걸 아니까? 이미 만족할 준비가 돼있기 때문에? 아니면 이런 거래에 본인들도 신기해서?

 

당근마켓은 '당신 근처의 직거래 마켓'의 준말이란다. 이걸 이용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의미. 당근, 먹는 당근으로만 생각했다.


당근(唐根)은 당나라에서 온 뿌리채소를 의미한다. 다른 말 홍당무는 당나라에서 온 빨간무를 뜻한다. 간혹 당근은 한자어이고 홍당무는 순우리말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있는데 오십보 백보다. 그게 바로 당근이다. 


당근이지가 긍정과 공감의 단어로 통용된 지는 고작 10년밖에 안 된다. 이 짧은 역사의 신생어가 놀랍게도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 어떻게?


당근 ; 명사. 재미있게 말하거나 강조하여 말할 때, ‘당연하다’의 뜻으로 쓰는 말. 비슷한 말 당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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