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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ug 04. 2021

어떤 옥수수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먹거리

옥수수가 도착했다. 옥수수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도 동봉돼 있다. 옥수수를 더 맛있게 먹는 방법도 들어 있다.     

새벽에 수확한 옥수수입니다. 받자마자 옥수수 껍질을 다 벗기지 마시고, 한두 겹 남기고 옥수수수염도 깨끗이 씻어 넣어 함께 삶으셔요. 삶은 옥수수를 바로 드시는 게 제일 좋지만 많으면 삶은 옥수수를 랩에 싸서 냉동하고 생각날 때 다시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식감이 그대로에 가깝습니다. 다 먹은 옥수수자루는 부드러울 때 대꼬챙이를 꽂고 다시 바싹 말려 ‘수제 효자손’을 만드셔도 됩니다.”     

매년 여름 이 옥수수가 도착하면 그분의 지시 사항을 수행한다. 옆집과 아랫집에 나누어 주고도 남아 랩에 싸서 냉동 보관하기도 한다. 몇 개월 지나 냉동실의 옥수수를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식감이 거의 살아 있다. 옥수수가 고마운지, 전자레인지가 고마운지, 그때마다 헷갈린다.

 

물론 보낸 사람이 가장 고맙다. 해마다 옥수수를 선물해 온 지 21년째라는 걸 처음 알았다. 세상에! (나는 꾸준하고 일관된 사람이 제일 부럽다)


한번 시작한 선물을 멈출 수 없어서 (대상자를) 신중하게 선택한다고 한다. 신중하게 선택해도 해마다 숫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선택된 데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감사.


옥수수 박스에는 늘 짧은 편지가 동봉돼 있는데 그 글을 읽는 것도 늘 맛있다. 담백하고 소박한 짧은 글이, 옥수수와 닮았다.


올해는 (다른 해에 비해) 장문이었다. 그의 자당이 하늘나라로 떠나셨나 보다.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다가 ‘수제 효자손’을 발견했다는 사연이 들어 있다. 대나무 꼬챙이에 마른 옥수수자루를 박아 만든 효자손. 그렇지. 우리 모친들은 종종 옥수수로 등을 긁었지.      


옥수수는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먹거리 중 하나다. 밀, 쌀과 함께 세계 3대 식량인 걸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쌀과 밀은 금방 떠올리면서 옥수수의 저력은 감을 못 잡는다. 그만큼 소박한, 한편으로는 풍성한 작물이다. 주식이라기보다 간식 느낌이 더 들고, 흔하고 값도 싸며, 첩첩산중에서 재배되어 한여름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미국의 옥수수 농장을 보면 기가 질리지만).


옥수수란 이름도 왠지 구수하다. 순수 우리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중국에서 건너온 한자어다(실제 옥수수의 유입처도 중국이다). 한자 옥수수(玉蜀黍)를 보면 느낌이 제법 고급스러운데, 玉이란 접두사 때문이다. 옥수수의 다른 말 강냉이는 순우리말인데 역시나 털털한(가난한?) 느낌을 준다. ‘강냉이’는 (굳이 따지자면) 옥수수의 알갱이, 그것들을 튀긴 것을 가리킨다.


그는 왜 선물 품목으로 옥수수를 택했을까. 옥수수를 먹으며 추측해보니 느낌이 왔다. 옥수수도 옥수수지만 아마도 옥수수를 키우는 사람을 택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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