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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ug 21. 2018

‘내것’, ‘네것’, ‘우리것’

이거야말로 환장할 일이다

오래된 유머 시리즈 중 이런 게 있었다.

간통죄 시리즈에 나오는 ‘충청도 아줌마’ 편이다. 경찰서에 불려와 ‘간통죄’ 추궁을 받던 충청도 아줌마. 형사가 왜 그랬느냐고 호통을 치자 아주머니가 답했다. 

“아니, 있는 줄 빤히 알면서 달라고 하는데 워치게 안 준대유?” 

어이없어하는 형사 앞에서 쭈그리고 있던 충청도 아줌마가 고개를 들고 또 물었다.

“그란디 말유, 형사 양반. 도대체 은제부터 국가에서 내껄 관리했대유?”


이 유머는 1980년대에 유행했다. 그 뒤로도 오래도록 간통죄가 위헌이냐 합헌이냐를 두고 논란은 계속됐다. 폐지돼야 마땅하다는 주장과 존속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다가 마침내 폐지됐다. 그래도 조심들 하시라. 폐지가 마땅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이 유머를 들먹인 건 아니다.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간통을 권장하는 이들'은 아니다. 사람이 결혼을 했으면 가정을 충실히 가꾸고 한 사람과 죽는 날까지 사랑해야지, 왜 간통을 하는가. 다만, 자기 몸에 관한 권리이며 순리이기도 한 애정사를 왜 국가가 관리하는가를 묻는 것이다. 물론 과거 어떤 시기에는 국가가 나서서 관리해주지 않으면 가정이 온전히 지켜질 수 없었던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법률이나 윤리로서 통제했던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관리 주체는 다음 네 가지로 나뉜다.

내것을 내가 관리하는 것, 공동의 것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 공동의 것을 내가 관리하는 것, 내것을 공동체가 관리하는 것. 이 중 앞의 세 가지는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네것도 사실은 네것이 아니다’는 종교적 교시를 들이댄다면 할말이 없지만) 어쨌든 사회는 ‘내것은 내가 관리하는 데’ 동의하고 있다. 공동의 것을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은 공동이 동의했을 테니 그 역시 문제될 게 없다. 공동의 것을 내가 관리하는 것 역시 공동이 바보들이 아닌 다음에야 믿을 만하니까 맡긴 것으로 봐야 옳다.

문제는 내것을 공동이 관리해야 한다고 다수가 개인에게 들이댈 때다. 이거야말로 환장할 일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내것’의 개념, 관리대상, 공동의 영역 등등은 애매한 경우가 많다. 가령, 공동의 돈을 개인에게 지원해줬을 때를 보자. 공동의 돈을 받은 개인은 그 무엇인가를 공동에게 관리받아야 한다. 공동의 지원금이 얼마냐에 따라 공동의 개입 강도가 달라질 것이다.

그렇게 공동의 개입을 십분 양보해 허용하더라도 저 충청도 아줌마의 경우는 왠지 억울해 보인다. 자기 걸 자기가 관리했고, 상대 역시 자기 걸 자기가 관리한 것일 테니. 굳이 관리대상을 넓히더라도 여기에 개입할 당사자들은 가정 구성원들에 불과하다. 특별히 요청하지 않은 한 경찰이, 국가가 나설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귀하가 담배를 안 필 권리가 있듯이 내게도 담배를 필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말도 나름 일리가 있다. 훔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까운 돈을 내고 산 ‘내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아주 작게 속삭여도 큰일 나는 세상이다. 피해에 대한 해석 때문이다.

사람의 건강에 피해를 주는 요소들로 따지면 담배 외에도 수만 가지가 존재한다. 누구는 뒤따라오는 트럭의 경적 소리에 놀라 심장이 마비됐다고 하고, 어떤 이들은 지하철에서 방귀를 뀌었다고 주먹다짐을 했다지 않는가. 그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면 "경적은 위험하니 자동차에서 클랙슨 장치를 떼어내자"고 하거나 "방귀는 만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요소이니 항문에 잠금장치를 하자"는 주장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육체적 건강 이상으로 마음의 건강, 지혜의 건강을 얘기하는 시대로 하루빨리 진화해야 한다. 가뜩이나 인간들의 수명이 너무 늘어나 사회적 문제가 심각하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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