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낭만시대
조금 전, 낮술 좋아하는 과객들과 딱 한 잔 걸쳤다. 안주는 정치인의 성(性)희롱 파문.
과객 1이 말했다.
“그것 참 왜 쓸데없이 여자들하고 술을 마시고 쉰소리 나부끼다 망신을 당해. 그냥 한 바퀴 돌리면 간단해지는걸.”
아, 멋진 말이다. 과객 1은 춤의 고수다. 장안의 웬만한 카바레는 다 접수했던 시절이 있었고, 그 즈음부터 낮술파가 되었다. 밤술을 마시면 여자들 돌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란다. 춤의 고수는 리듬을 알고 상대의 반응을 알고 운치에 몸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과객 2가 말했다.
“백호 임제도 황진이 무덤가에 술 한잔 올리고 9시간 만에 잘렸었는데, 정치인이라면 그런 무모함도 감당할줄 알아야지.”
그는 역사에 밝고 문학에 정통한 낮술파다. 밤에는 책을 보고 글을 써야 하기 때문에 주로 낮술을 마신다. 그가 올린 안주 백호 임제(林悌)는 조선시대 풍운의 정치인. 황진이의 죽음을 애석해 하며 낮술을 마신 게 빌미가 돼 퇴출당한 일화로 유명하다. 임제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의 시는 누구나 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는가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
기생의 무덤 앞에서 낮술 마시며 질질 짠 게 위법이었는지, 불후의 명시를 남긴 것이 위법이었는지… 9시간 만에 관직을 박탈당한 임제를 나는 조선시대 두 번째 낭만주의자로 기억한다. 임제가 자유인이 되어 세상을 떠돌다 남긴 또 한편의 시가 있다. 남의 아내와 동침한 뒤 그의 남편에게 들켰을 때 (즉, 간통 현장에서) 지은 시다. 그 여자 남편이 칼을 들고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을 때 “잠깐, 시 한 수만 듣고 죽이라”고 사정사정해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어젯밤 장안에서 술에 취해 여기오니
복숭아꽃 한 가지가 아름답게 피었네
그대 어찌 이 꽃을 번화한 땅에 심었는가
심은 자가 그른가, 꺾은 자가 그른가
이 시를 들은 여자의 남편은 임제와 호탕하게 술 한잔 나누었다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아슬아슬 낭만과객들은 입으로 생존하곤 했다. 그에 비해 요즘 일어나는 성희롱 파문들은 유치만 찬란하다. 술은 멋을 부른다. 하지만 그 멋은 품격을 동반해야 낭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