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든 코다리든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맛있을 때, 비록 어마어마한 맛은 아닐지라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저녁에 먹은 코다리찜이 그랬다. 사실 어마어마한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맛있게 먹었다. 기대감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덕을 본 셈이다.
코다리는 세 가지가 중요하다. 하나는 쫀득쫀득한 질감. 명태를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말렸는가, 이후 유통 관리는 얼마나 잘했느냐가 질감의 운명을 좌우한다. 또 하나는 양념과의 조화. 한마디로 조리 실력이다. 질감을 살리는 조리, 마른 생선의 씹는 맛을 감칠나게 만드는 실력이 중요하다. 마지막은 무엇과 함께 먹느냐다. 음식 궁합이 맞을 때 코다리는 신나게 맛을 내준다.
아, 중요한 것 하나가 빠졌다. 맛있게 먹으려면 먹는 사람의 입장도 중요하다. 누구와 무슨 대화를 나누며 어떤 생각으로 먹느냐도 중요하다. 일종의 분위기, 흐름이다.
코다리는 명태를 반건조한 생선 이름. 명태와 북어의 중간 상태를 말한다. 왜 코다리인지는 모르겠다. 세계에서 가장 이름이 많으면서 세계 인류 중에서 유독 한국인들이 애용하는 생선님이다. 우리나라 식재료 중에서 명태처럼 많은 이야깃거리를 보유한 것도 드물다. 그 중 압권은 양명문의 시 ‘명태’다. 작곡가 변훈이 6.25 전쟁 시기 가곡으로 만들었고, 성악가 오현명이 부산극장에서 처음 대중들에게 불러 알려진 노래이자 시. 가슴 짠하게 만들면서, 범우주적 사유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무엇보다 술맛 당기게 꼬드기는 노래이자 시이다.
감푸른 바다 밑에서 / 줄지어 떼지어 찬물을 호흡하고/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 꼬리치고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 이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이 / 밤늦게 시를 쓰다가 소주를 마실 때 /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 짜악 짝 찢어지어 /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 명태라고 이 세상에 남아 있으리라.
명태든 북어든 코다리든 먹을 때, 절로 귓가에 맴도는 시귀. 오현명이 처음 이 노래를 불렀을 때 객석 여기저기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이튿날 조간신문들은 ‘그것도 노래냐’는 비판을 쏟아냈고. 작곡가 변훈은 이 충격적 반응들을 보고 작곡가로서의 삶을 포기했다는 썰. 세상에... 훗날 국민 가곡처럼 대중화된 명곡의 출발이 왜 그토록 처참했을까? 한 음악평론가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때는 그랬다. 가곡은 은은하고 아련하고 격조가 느껴지는 것이라야 했다. 홍난파 류의 가곡이 익숙했던 시기에 베이스 바리톤의 굵직하고 우렁찬 노래를 듣는 게 어색했던 것이다."
아무튼, 동해바다 태평양을 노닐던 명태를 누군가(어진 사람이었으리라) 거두었고, 쫀득하게 말렸고, 미이라가 된 그것을 우리가 (시인도 아니면서) 짜악 짝 찢어가며 씹어 제끼고 있는 것이다. 오늘 저녁처럼 소주를 마시며. 맛있는 음식, 딱히 요리가 좌우하는 것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