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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Feb 28. 2022

나물을 먹으며

나물도사를 추억함

봄이 오니 조 처사가 떠오른다. 위암 환자여서 “위 90%를 제거했다”란 말을 자주 했다. 그때 알았다. 위가 없어지면 장이 위 역할을 대신 한다는 것을. 그래서 조 처사는 늘 "조금씩 자주" 먹는다고 했다. 


조 처사의 표정은 늘 밝았고 위트가 번득였다. 그를 만난 곳은 해인사의 한 말사 암자였는데 거기에는 조 처사 같은 요양인, 고시준비생, 학생, 작가, 휴직기자 등등 별별 직업군들이 묵고 있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고 암자 생활을 오래 해온 사람이 조 처사로 암자에 갓 들어론 신입자들 모두 그에게 많은 의지를 했다.

 

한마디로 ‘절 생활은 이렇게 하는 것이여’를 깔끔하게 가르쳐주었다. 모두 다 타인인 산골 숙소의 행동지침, 어울리는 요령을 쉽게 터득할 수 있던 것도 조처 덕이었다. 아주 내성적인 이들도 조 처사와 인사를 나눈 뒤부터는 편하고 즐겁게 먹고 자고 공부하고 놀곤 했다. 


“나물 많이 드시소.”

조 처사는 나이는 많았지만 말투는 담백했고 간결했다. 그런데 식사 자리에서 나물에 대한 예찬은 거듭 반복했다. “하찮아 보이지만 밥보다 귀한 거여”, “스님들이 건강한 건 나물 식습관 때문”, “값도 싸고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게 나물인데, 신기하지 않소?” 식으로 약간씩 변형된 나물예찬을 지치지 않고 끌어갔으며 나물 하나하나의 특색과 맛을 맛깔지게 설명하곤 했다. 


그의 설명이 다소 독특해 어떤 이들은 개똥철학이라고 눈을 흘기기도 했지만 각인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고사리는 삶는 요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나물이다, 정력감퇴 효과를 낸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삶느냐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콩나물은 독보적인 한국형 건강식이다. 반찬 중에서 가장 싸고 안방에서도 쉽게 길러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이라니... 뭐 이런 식의 설명들이었고 버섯과 나물들만으로도 고기맛을 얼마든지 낼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어느 날터인가 나는 그를 나물도사라 불렀고 세월이 지나면서 그의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경험을 하게 됐다.


그와 헤어진 1년 여 뒤 부음 소식을 들었다. 멀리 마산까지 조문을 가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술상에 올려진 고사리무침에 자주 손이 갔는데 암자에서 먹던 맛은 나지 않았다. 유족에게 인사할 때 “도인이셨는데, 특히 나물을 좋아하셨죠”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나물이 더욱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나물은 야채와 어떻게 다른지, 채소와 야채는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많은 설들이 있다. 사전적 기준으로는 모두 유사하고 구별하기 쉽지 않은데 머릿속 이미지나 입 속의 느낌은 저마다 다르다. 나물의 국어사전 정의를 보자.     


나물 ;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이나 나뭇잎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고사리, 도라지, 두릅, 냉이 따위가 있다.     

맨 앞의 정의는 야채(채소)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뒤에 붙는 예시를 보면 다르다. 배추나 고추, 깻잎이나 콩잎을 나물로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야채와 채소는 거의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데 엄격하게 구분하면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야채는 일본식 표기이니 채소가 바른 단어라는 주장들도 한때 많이 했지만 둘다 우리말 표준어다). 여러 설과 음식용어 해석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야채(野菜) : 들에서 자라는 나물, 채소의 총칭. 산과 들, 밭 등 야생에서 자라는,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의 통칭이다.


채소(菜蔬) : 밭에서 기르는 식물성 농작물. 잎이나 줄기를 먹는 작물을 말하지만 뿌리나 열매를 먹는 작물도 포함된다. 


나물 : 채소이면서 야채 쪽에 조금 더 가까운 요리용 식물들. 야생(곧 자연 생태)의 느낌이 강하지만 밭이나 공장에서 재배하는 나물이 더 많다.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나물은 채소에 포함되지만 채소들이 모두 나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산나물, 들나물, 밭나물(콩나물이 약간 애매한데 밭나물에 포함하는 것이 맞을 듯)로 구분된다.    


나물의 가치가 과거와 달라져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때는 하찮게 여겼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귀해진 것들이 많다. 모든 하찮은 것들의 가치도 그렇게 변하길 이 봄에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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