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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Mar 15. 2022

비밀의 음식

불맛보다 물맛을 중시하는 나라

한 사람이 평생을 함께 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보헤미안입니다. 생활력,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추상적이죠. 컴퓨터와 인터넷 문화를 즐기고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글로벌한 사람이고 디지털에 대한 관심이 많으며, 메타포가 강한 사람입니다. 일에 빠져 사는 게 아니라 (일이라는) 재미에 빠져 노는 겁니다.”


두 평가를 들은 남자가 갸우뚱했다.

“똑같은 얘기잖아?”


봄날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난 이어령 선생에 관한 평이다. 시대의 지성인으로 세상 온갖 분야를 새롭게 해석하며 영감을 주던 그가 한국 음식의 특징을 가지런히 정리한 적이 있다. 그가 정리한 한국 음식의 비밀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 첫 번째 비밀 : 밍밍한 맛. 한식의 맛은 짜고 달고 시고 맵고 쓴 오미가 끝이 아니다. 밍밍하고 슴슴한 무미의 맛이 존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밥맛이다. 밥맛은 아주 싱겁지만 짜고 매운 여러 반찬과 어울리면서 새로운 맛을 갖게 된다.


○ 두 번째 비밀 상차림. 한국 음식은 밥과 국, 채소, 고기, 생선, 심지어 후식으로 먹는 떡과 식혜까지 동시에 한상 위에 차린다. 이들은 홀로 있는 음식도, 독자적인 맛을 지닌 음식도 아니다. 병렬적 동시 구조의 상차림에서 한국인은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능동적으로 먹는다. 먹는 사람이 음식 맛을 만드는 것이다. 


○ 세 번째 비밀 담그고 삭히는 요리 코드. 한국의 요리는 날것(生食)과 익힌 것(火食)의 두 대립 코드에서 일탈해 제3항의 체계를 만들어낸다. 날것도 익힌 것도 아닌 삭힌 맛, 발효식이다. 배추를 날것으로 요리하면 샐러드가 되고, 불에 익히면 수프가 된다. 그러나 그것을 삭히면 김치가 된다. 샐러드 같은 자연의 맛이나 수프 같은 문명의 맛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3의 맛이다. 자연과 문명의 대립을 뛰어넘는 ‘통합(integral)’의 맛이다. 장과 김치로 대변되는 한국 음식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콩이나 배추, 무가 아니라 시간일지도 모른다.


○ 네 번째 비밀 : 나물 요리의 뒤엉킴. 한국인은 나물 민족이다. 한국어 사전에는 나물 이름이 250가지나 나온다. 달래·냉이·도라지처럼 뿌리를 캐 먹는 나물, 시금치나 취나물처럼 잎을 먹는 나물,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처럼 열매의 싹을 틔워 먹는 나물까지, 식물의 잎·열매·줄기·뿌리·껍질·새순 등 거의 모든 부분을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다. 생으로 먹기도 하지만, 살짝 데치고 무쳐 먹기도 한다. 나물은 덩이와 입자형의 음식물과 달라 금세 다른 것과 뒤엉겨 결합될 수 있다. 


○ 다섯 번째 비밀 : 국물 맛, 한국의 맛을 해독하는 중요한 코드다. 서양의 요리 코드가 ‘고체-액체’ ‘건식-습식’의 대립 항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한국의 요리 코드는 이 대립의 경계를 없애고 음식의 건더기(고체)와 국물(액체)을 함께 먹는 혼합 체계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한국의 음식은 ‘물’이 핵심이다. 서양에선 물 없이 오븐에서 빵을 굽지만 한국은 시루떡조차 물을 이용한다. 찌고 고고 끓이는 게 한국의 물맛이고, 굽고 볶고 튀기는 것이 서양의 불맛이다.


결론, 한국 음식은 Being(존재)이 아니라 Becoming(생성)이다. 이미 완성돼 끝난 맛이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발전하는 진행형이라는 비전을 전하고 그는 죽음의 비밀을 탐구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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