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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Apr 28. 2022

문어와 목련

눈이 부시고 속이 시리고

#1

문어를 먹었다. 별미가 분명했지만 그닥 맛은 없었다. 차라리 오징어나 낙지가 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입맛이 싸구려라는 말을 들을 듯 싶어 입을 단속했다.

 

문어와 오징어, 낙지, 주꾸미는 모두 문어과에 속한다. 그들과 모양이 비슷한 연체동물 꼴뚜기만 문어과에 속하지 않는다(역시 꼴뚜기는 튄다). 


문어는 같은 과의 오징어나 낙지, 주꾸미들과 비교해 훨씬 귀한 대접을 받아 왔지만 입이 저급한 나는 그 맛을 만끽하지 못한다. 오징어나 주꾸미에 비해 왠지 덤덤하고 건조한 느낌이 들 뿐이다. 그래서인가, 문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출신이 귀해 보인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그런 어느 날 문득 문어 맛을 모르는 게 엉뚱한 데 있다는 핑계거리를 찾았다. 입맛이 아니라 이름 때문이라고, 거창한 이름에 덩치까지 커서 거북한 느낌을 갖게 됐다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오징어, 낙지, 쭈꾸미(주꾸미라는 표준어보다 쭈꾸미라는 된소리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짜장면이나 짬짜면처럼)는 이름에서부터 쫀득한 자극을 주지만 문어에는 그런 유혹이 없다고, 너무 점잖고 묵직하다고. 文魚라니, 어류의 이름치고 너무 고상하지 않은가. 


물론 이름의 배경을 알아보니 전혀 고상하지 않았다. 문어가 내뿜는 먹물 때문에 붙은 거란다. 글쓰고 그림 그리는 데 쓰이던 먹물을, 문어는 위기의 순간에 훅 내뿜고 도망치는 자위수단으로 써먹는다(붓, 펜의 먹물이나 문어의 먹물이나 용도가 크게 다르지도 않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징어도 낙지도 먹물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먹물 양이 문어보다 적어서 밀린 것일까. 역시 큰 것이 우선권을 갖는가. 젠장이다.


#2

넷플릭스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이란 다큐를 봤다. 문어의 매력에 금세 빨려들었다. 머리도 좋고 놀기도 좋아하고 무엇보다 (사람과) 교감능력이 뛰어난 바다생물, 물고기인듯 물고기가 아닌듯한 문어를 가리켜 ‘바다의 현자’라 부르는 이유도 알게 됐다. 


심지어 인류가 멸망한다면 이후 지구를 이끌 생명체가 문어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있단다. 간혹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 문어와 비슷하게 등장하는 이유도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다. 강한 몸보다 유연한 몸(정신도 마찬가지다)이 적응과 진화에 유리한 것은 과학적 증명을 넘어 삶의 여정을 통해서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나저나 지구가 망해서는 안 될 텐데, 우리나라도 지금보다 좋아져야 할 텐데… 젠장, 걱정이 태산이다.


#3

엊그제까지만 해도 화사하게 빛나던 목련꽃이 금세 사라졌다. 아쉬움을 남기는 심술꾸러기 꽃. 그런 점에서 문어와 목련은 닮은 것 같다. 큼직큼직 눈에 확 띄는 외형, 이면의 유아독존적 이미지가 그렇다. 묵묵히 저 홀로 존재해도 무방한 의연함도 닮았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찰나의 변신에 눈이 부시고 속을 시리게 하는 것까지도 닮았다. 젠장, 봄은 또 금세 떠나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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