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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May 02. 2022

물과 아이스크림

필수재와 보완재의 차이

어제 점심시간, 식당에서 나눈 대화.

“이 페트병 물을 놓고 요즘 논란이 많아요. 사람들이 이 물을 깔끔하게 다 먹지 않잖아요. 페트병에 남은 물을 식당에서는 어떻게 할 것 같아요? 남은 물에 새 물을 보충할지, 깔끔하게 비우고 다시 채울지…”


그냥 보충해서 내놓을 것 같다(요즘 같은 계절에는 냉장고에 넣어놓겠지). 페트병에 입을 대는 것도 아닌데, 일일이 새로 비우고 다시 채우고 하는 건 비효율적인 것 같다. 환경 측면에서도, 절약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위생을 생각하면 왠지 찝찝하기도 하다.  


“주기가 관건 아니겠어요? 적절한 시점에 전체적으로 잘 닦고 소독하고 하면 되지만 과연 그렇게 철저히 관리할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죠.”


글쎄, 확답하기가 힘들다. 주방부터 화장실까지 외식 경영 관리 시스템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각종 매뉴얼을 섬세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물 관리(세척주기라든가, 물통과 컵 관리 등) 매뉴얼까지 갖춘 식당은 거의 없다.


효율성과 안전성(위생성), 경제성과 환경의식의 충돌(또는 조화)에 대한 논란은 수많은 분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늦은 점심 후 다소 한가로워진 매장에서 주인과 나눈 대화.

“모임이 자유로워져서 고객이 늘어나고 있지요?”

“순진하시긴. 잠깐 반짝하긴 했지만 예전으로 돌아가진 못할 것 같아요. 이미 생활패턴이 바뀌었다는 걸 실감합니다. 우리 같은 오피스 가 식당은 직장인들의 회식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앞으론 그런 회식을 기대하긴 힘들 듯해요.”


식당 주인의 얼굴에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대단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새롭게 형성된 직장문화와 생활패턴은 새로운 시대의 진입을 노골적으로 알리고 있다.     


매장에 후식용 아이스크림을 구비한 식당들이 늘고 있다. 언젠가부터 식사 후 커피보다 간단한 디저트를 원하는 신체적 변화도 일어나는 것 같다. 수십 년 전 유행하다 사라졌던 아이스바를 식당에서 발견했다. 


아이스크림은 이제 성장 아이템도 아닌데(아이들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질기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기분전환이 되는 보완재의 힘이다. 물은, 없을 때 가치가 드러나지만 있을 때는 존재감이 없다. 필수재는 말이 없다. 


냉장고를 필요로 하는 빙과가 대중화된 건 고작 수십 년밖에 안 된다. 참고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현대식 아이스크림을 먹은 사람은 고종 황제라고 전해지는데 과연 그런지 논란이 많다. 고종이 먹기 전에 기미상궁이 먹었을 테고, 그 전에 그 맛을 본 상인과 신하들이 몇몇 있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해외에 나가 살던 외교관이나 유민들이 먼저 맛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팩트와 상관없이 상징적으로 황제를 최초 자리에 올린 셈. 상징은 힘이 세다는 걸 아이스크림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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