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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n 20. 2022

빵이든 국수든

물가 불안 시대의 한숨 

빵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빵순이에게 이런 지적을 당한 적이 있다.

“서양에 빵이 있다면 동양엔 떡이 있다면서 빵과 떡을 대칭으로 놓곤 하는데 그건 잘못이에요. 서양의 빵은 우리의 밥처럼 주식의 중심에 있는 음식이고 우리의 떡은 간식이나 후식, 보조음식에 가까우니까.”


굳이 비교한다면 빵과 밥을 대칭으로 놓는 게 맞다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빵과 떡을 평형에 놓는 사고가 쉬 바뀌지는 않는다. 아마도 음식의 모양과 이름, 먹는 방식 등의 유사성 때문인 듯 싶다. 빵과 떡은 된소리 단음절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고 모양이나 종류의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사람의 주 식재료는 쌀과 밀이다. 쌀농사가 수월한 지역에 자리잡은 민족들은 밥을 주식으로 삼았고, 밀농사가 수월한 지역에 자리잡은 민족들은 빵을 주식으로 삼았다. 물론 지금은 쌀과 밀을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시대라 쌀 문화권과 밀 문화권의 구별 의식도 미미해지고 있다.

      

국수라면 사족을 못 쓰는 선배가 있는데, 그와 만날 때는 늘 면 요리를 고려해야 했다. 배려도 지나치면 결례가 된다고, 어느 날인가 “날 너무 쫄면으로 보지 마”라고 나무라며 국수 선배는 약속장소를 고깃집으로 바꾸었다. 


술과 고기를 실컷 먹고 떠든 뒤 후식을 주문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는 소면을 시켰고 마지막 남은 고기 두어 점을 국수에 말아 먹었다. 

“고기는 역시 면과 같이 먹어야 제맛이 나지.”

마지막 입가심이 화룡점정처럼 보여 작은 감탄이 나왔다. 역시 맛을 아는 선배였다.

      

쌀국수 시장이 경이롭게 커지긴 했지만 (국내 1200억원, 세계 4.4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국수의 주재료는 역시 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국수에 불리한 여건이다. 밀 재배량이 전체 밀 소비량의 1%에 불과한 현실이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수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며 대중 음식으로 각광받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밀가루 값이 싼 게 결정적이다. 한때는 미 군정의 무상 원조를 받아 무한정 밀이 들어와 전통의 메밀국수까지 고사될 뻔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니 밀 농사가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급기야 ‘우리밀’을 살리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지금도 이 운동이 계속되고 있는데, ‘우리밀’이 보통명사로 인식될 정도다). 


우리밀의 가격은 수입산보다 2~3배 비싸다. 하지만 실제 가치는 그보다 훨씬 크다. 환경과 건강적 가치를 고려해도 그렇고 국제곡물 시장의 위태로움까지 감안하면 더욱 더 가치가 크다.      


지금은 밀 수확기인데도 밀 가격이 심상찮게 오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국제 밀 가격도 폭등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 불길한 징조는 없다. 그야말로 식재료 시장의 일대 전환이 일어나는 불안한 시기에 물가 잡으려는 노력은 안 하고 뭣들 하고 있는지, 빵이나 국수나 참 답다압~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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