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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n 30. 2022

기름의 노예가 되어

기름지게 산다는 것

“기름진 땅이 뭐야? 기름이 많이 나는 곳이야?”

교회에 다녀온 아이의 질문에 엄마가 당황하고 있다.

 

깜찍한 듯 황당한 아이의 질문을 무수히 받아온 엄마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설명하려 하다가 멈칫 얼굴이 뜨거워졌다. 왠지 모르게 아이의 정의도 틀리지 않은 것 같아서다. 기름은 모든 것을 부드럽고 하고 풍성하게 만들지 않는가.


기름을 많이 가지고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시기다. 국가 간 전쟁도 기름 떨어지는 곳이 지게 돼 있다. 기름 값이 계속 오르는 것보다 무서운 게 있을까. 총소리, 대포소리 빵빵 터지는 것도 공포지만 그보다 기름이 더 무서운 이유는... 기름 값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보편적 영향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 우리는 모두 기름의 노예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조건에(과거에는 의식주가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이동수단이 추가된다) 기름이 받쳐주지 않는 곳은 없다.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 움직이는 것들 모두 기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기름은 한자로 유(油), 영어로 오일(Oil)로 통칭한다. 기름, 유, 오일… 모두 유들유들하고 기름기름한 음감을 갖고 있다. 물과 섞이지 않는 미끈미끈한 액체로 식물과 동물, 광물 등 생명체와 무생명체 모든 것에서 추출된다. 각종 식물과 동물에서 추출한 기름은 요리에 쓰는 식용유로, 광물에서 추출하는 기름(석유)은 산업용 동력으로 쓰이며 휘발유, 경유, 등유, 중유 등으로 구분된다.

 

이들의 역할은 윤활 작용에 있다. 뭐든지 부드럽게, 유연하게, 잘 돌아가게 해주는 보완제라 할 수 있다. 더 감미롭고 더 풍요롭고 더 리듬있게 해주는 알파(ⱥ)적 생활의 필수재이기도 하다. 식용 기름뿐만 아니라 산업용, 공업용, 난방용 기름들도 마찬가지다. 윤활작용으로 생활을 기름지게 해주던 것들의 값이 오르자 우리는 모두 경직된 모드로 돌변하게 됐다.


경유값이 휘발유값보다 비싼 것도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낯설고 이상하고 뭔가 잘못된 것 같다. 하지만 (경험이 곧 진리가 아닌 다음에야) 달리 생각해보면 경유값이 비싼 게 옳은 것도 같다. 당장의 효율도 중요하지만 환경을 고려하면 그래야 맞다는 것인데, 알쏭달쏭 시시때때 귀가 팔랑이는 내가 밉다.


쇠기름과 돼지기름보다 콩기름, 들기름이 훨씬 대우받는 시대가 된 지 오래다. 올리브유, 카놀라유, 포도씨유, 해바라기씨유도 고급 지위를 차지한 지 오래다. 요리 종류에 맞게 제각각 역할을 달리하는 맞춤형 기름들도 나타나고 있다. 


볶음용, 무침용, 튀김용, 구이용 등을 넘어 주 식재료에 따라 오일을 달리 사용하라는 권유인데 사실 큰 차이는 없다. 기업들의 상품마케팅에 적당히 활용당하는 것이다. 뭐,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니 흥분해 봤자다.


어쨌든 요지는 기름의 중요성, 영향력이 어마무시하다는 얘기다. 대포알도 중요하고 밀가루도 중요하지만 기름값 잡는 것이 우선이란 얘길 구구절절 늘어놓다 보니 더욱 확실해진다. 나는 기름의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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