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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l 04. 2022

단어도 나이가 든다

뜨거운 개, 핫도그를 보고


핫도그(Hotdog)를 중국에서는 열구(熱狗 ; 뜨거운 개)로 표시한다. 우리은행은 중국에서 ‘이로운 친구(좋은 친구)’라는 의미의 友利로 표시한다. 우리는 ‘우리’를 순수 우리말로 알고 있는데, 중국에서 표기한 한자를 보고 나니 엉뚱한 생각도 든다. 우리의 ‘우리’가 사실은 서로 (이권을) 돕는 관계를 내포한 음차였던 것은 아닌지. 우리를 友利로 선택한 우리은행 당사자들도 막상 써놓은 뒤 무릎을 치며 감탄했을 것 같다.      


단어도 나이가 든다. 새로 탄생한 단어는 한동안 무시당하기 일쑤지만 일정 기간을 견뎌내면 신선한 용어로 대접받게 된다. 그리고 한세월이 지나면 처음 사용하던 의미가 잊혀지고 무의식적인 소리만 남곤 한다. 말하자면 외국어의 단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자꾸 의미를 떠올리게 되지만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사용해온 언어들은 굳이 의미를 떠올리지 않고 저절로 사용되는 것과 같다.


롯데도 마찬가지다. Lotte를 보며 괴테의 베르테르를 떠올리는 이들은 이제 얼마 되지 않는다. 로테와 롯데는 완전 다른 이름이 돼버렸지만 처음 기업명의 출발이 '젊은 베르테르'의 연인 이름에서 출발했음은 공지의 사실이다.


아, 그러고 보니 베르테르는 늘 젊기만 하다. 젊어서 죽었기 때문에, 유관순 누나가 영원히 누나로 불리듯 젊은 베르테르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제목이 '젊은 베르테르'여서 그는 늘 젊은 청년으로 기억될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단어의 힘이다.    


롯데는 우리나라 유통시장의 최대 강자다. 베르테르가 사랑한 여인과 달리 거대한 몸체에 많은 수족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유통인들의 속설로 ‘껌 팔아 성장한 기업’이라 ‘모든 게 짜다’는 도 있다. 


그와 대비되는 대기업은 ‘현대’다. 건설과 자동차라는 크고 굵은 사업으로 성장해 통이 크다는 속설이 있다. 기왕에 시작한 비교, 삼성의 출신 성분은 ‘삼성상회’다. 모든 것을 치밀한 상거래로 계산하며 성장해 이력답게 이들은 무엇을 추진하든지 섬세한 지도를 그리고 계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기업에도 출신 성분이 있는 것이다. 단어의 출현처럼 무서운 출신의 성분, 이른바 기업의 DNA다.    

 

롯데와 현대, 삼성 계열사를 모두 경험한 사람이 세 대기업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했다. 


“롯데와 현대는 둘 다 정교하지 않다는 게 공통점입니다. 현대는 큰틀의 방향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죠. 그것만 정해지면 자잘한 것들은 미리 정하지 않아요. 일단 추진하면서 나머질 해결해 가죠. 치밀하지 않다는 점에서는 롯데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롯데는 일단 가면서 적응하고 적음하기 위해 변신을  하죠. 삼성 쪽은 작은 팀의 간단한 워크숍 하나만 갖고도 별의별 계획을 다 짭니다. 몇 시에 뭐하고 몇 시에 뭘 먹고, 몇 시에 잠을 자고…”


최근 들어 이들 대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기존의 DNA가 더욱 굳어지는 느낌이 든다. 롯데는 더욱 계획성을 무시하며 사업을 늘리고 좌충우돌하경향을 보인다. 현대 계열 기업들의 공격적 성향은 다소 주춤해 보이지만 뚝심만은 여전하다(삼성동  한전 부지 매입이 대표적). 삼성의 피를 이어받은 기업들은 새로운 계획과 전략을 끊임없이 짜내며 수정과 대응에 집중한다. 얄미울 정도로 계산하고 따지고 체크해가는 수위가 지나쳐 때론ᆢ 걱정 천국을 만들기도 한다.


한 유통기업인의 말이다.

“전략이나 계획보다 중요한 것은 자본입니다. 자본의 힘이 있는 한, 큰 틀에서의 방향만 맞다면 무엇을 타고 가든 무슨 상관입니까? 특히 한국시장에서 유통의 자본력은 무엇을 선택하든 성공하기까지의 기간이 얼마나 되냐 정도에 불과해요. 오히려 지나치게 섬세한 계획이 로스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는 동안 타이밍 놓치고 응집력도 떨어지게 되거든요. 시장은 정확한 걸 원하는 게 아니라 타이밍을 원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해가 됐다. 핫-도그를 ‘뜨거운 개’로 번역했다고 해도 시장이 외면하지 않은 이유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답답하고 불길한 예감이 옆구리를 찌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에서의 승리가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 마침내 그들을 불행의 늪으로 유인하게 되리라는 예감 때문이다. 


그들이 어찌되든 무슨 상관이냐고? 그 불행의 늪이 워낙 크고 치밀한 고리로 꿰어 있기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다 빨려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주인공도 아닌 우리가 어떻게 탈출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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