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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ul 18. 2022

음악과 음식

임윤찬의 연주를 듣고

튀르키에(그때는 터키였다) 수도 앙카라에서 숙박했을 때의 일이다. 호텔 뷔페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는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소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아침식사 배경음악으로 나쁘진 않아 보였다. 


식사를 시작할 무렵, 익숙한 리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이게 뭐지? 싶었다. 음악은 킹 크림슨의 대표곡 ‘에피타프(Epitapt;묘비명)’였다. 


“헛, 여행자들이 많은 호텔에서 아침식사 자리에 이런 음악을 틀다니…”

“이게 무슨 곡인데요?”


음, 그러니까… 망설이다, 얼버무렸다. 

“너무 무겁잖아.”


아침부터 묘비명이 어쩌구 설명하기가 부담스러웠고, 쓸데없이 불길한 느낌을 일깨울 필요가 없었다. 무시하고 음식 맛에 집중하려 했지만 언짢아진 기분이 회복되진 않았다. 이런 선곡 수준이면 음식의 격도 높을 리 없겠다는 연쇄적 추측이 뇌를 점령해 갔다. 

그날 내내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긴장을 했는데, 나 홀로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음악은 음식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과 식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어떤 대화를 나누며 먹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 이상으로 음악의 영향력도 크다. 


요리사들도 종종 음식을 음악에 비유한다. 요리사는 지휘자요, 식재료는 오케스트라와 같아 각각의 재료들을 조화시켜 작품을 완성하는 게 요리라는 것이다. 


음식이 발달한 곳에서 음악도 발달한다. 음식도, 음악도 상상을 현실화해 새 에너지를 창출하는 과정이 비슷하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든, 어떤 음식이든, 사람과 사람의 관계처럼 나에게 좋은 양분이 전이될 때 가치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이 화제다. 클래식 음악이나 피아노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조차 그의 연주를 보고 듣기 위해 난리(더 좋은 고급단어를 쓰고 싶지만 떠오르지 않는다)인데, 연주도 연주지만 겸연쩍게 말하는 그의 답변 내용이 매력적이다. 


(유럽 유학 계획을 묻자) “한국에 위대한 스승이 있어 그분과 의논하겠다.” 

(어떤 음악가의 영향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어떤 울분을 토한 다음에 나타나는 우륵의 가야금 연주를 상상하곤 한다.” 

(피아노 입문 동기를 묻자) “친구들이 태권도나 수영학원을 다닐 때 부러워서 동네 피아노학원을 갔다”는 대답들이 그렇다(아직 임윤찬과 깊이 있는 인터뷰를 진행한 매체는 없고, 수상 직후 이뤄진 간단 대화들의 요지다).


한류의 K 시리즈가 전방위에서 일어나는 가운데 K-클래식이 화룡점정을 찍는 듯한 예감이 든다. 위기의 시대 한복판에 이런 놀라운 청년이 나타난 것은 과연 우연일까. 모든 암시는 우연처럼 나타나 음식처럼 스며들고 음악처럼 번져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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