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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Sep 05. 2022

허둥지둥은 무엇인가

명절의 존재 이유

시골 사는 노모를 찾아뵈었다. 갈수록 힘이 떨어져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자식을 만날 때마다 ‘이제 가야 하는데’를 읊조리는 노모다. 평생 차멀미 공포증을 안고 살았고, 그래서 자동차를 끼고 살아가는 자식을 그 무엇보다 애틋하게 여긴다. ‘차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제일 안타깝다’는 여인, 떠나는 아들 차의 뒤꽁무니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집으로 들어서는 여인. 그의 아들은 욱, 엉뚱한 방향으로 화살을 쏜다. 명절이 싫다.


논리도 안 맞고 연계성도 없는 화풀이다. 아들은 멀미를 하지 않고, 차는 불편보다는 편리를 주는 도구이며 무엇보다 명절이 욕먹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번에는 새로운 버전이 나왔다. 집을 나서는 아들을 불러 세운 어머니가 “허둥지둥이 무슨 뜻인지 아니?” 하고 물었다. 


허둥지둥이라… 허둥지둥 집을 나서는 것처럼 비쳤나? 허둥지둥 사는 것처럼 비쳤나? 

눈만 멀뚱거리고 허둥지둥 서있는 아들에게 노모가 말했다. 


“급하게 서두르면 다친다는 뜻이란다. 내가 국민학교 때 배운 단어야. 허둥지둥 말고 조심해서 살어어.”  

살어어라고 길게 늘어지는 소리가 음악인 듯 비명인 듯 귀가 아닌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귀가 후 알랭 드 보통이 쓴 <불안>이란 책을 꺼낸 것은 우연이었다. 떠나는 아들을 보며 불쑥 ‘허둥지둥’이란 단어가 떠오른 어머니의 우연처럼 말이다. 그 책에서 오래 전 그어놓았던 밑줄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현대인들이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불안을 느끼는 몇 가지 이유에 관한 것이다.         


(1) 변덕스러운 재능

재능은 한동안 우리 손안에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아무 말도 없이 사라져 그간의 성공도 물거품으로 만들곤 한다. 변덕스럽게 나타나거나 사라지는 그 힘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다.


(2) 운

운과 수호신을 의지하거나 운과 불운을 핑계 삼던 시대가 있었다. 환경의 움직임을 통제하고 예측하는 인간의 힘이 성장할수록 운은 힘을 잃는다. 운은 승자가 만든다. 그것이 현대의 주문(呪文)이다.


(3) 고용주

1800년 미국의 노동력 가운데 20%가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어 있었다. 1900년에는 50%, 2000년에는 90%가 되었다. 그런데, 회사가 이윤을 개선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빠른 방법은 언제나 피고용자 숫자를 줄이는 것이다.      


명절 시즌이다. 명절은 즐거우라고 있는 것인데 돌이켜보면 버겁고 씁쓸했던 기억이 더 많다. 성인이 된 뒤, 나이 들수록, 권리보다 의무가 많아지면서 그렇게 바뀌었을 텐데… 사실은 명절이라도 있으니까 돌아보기를 하는 것이리라, 애써 위안한다. 그도 없으면 그야말로 허둥지둥 연속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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