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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Oct 14. 2022

술 당기는 날

동파육을 먹으며

술 당기는 날이다. ‘술 당기는’이라는 표준어를 쓰자니 왠지 술맛이 안 난다. 술은 역시 ‘땡기는’이 제맛이다. 술이 나를 땡기는지, 내가 술을 땡기는 건지, 잠깐 고민해 봤는데 아무래도 주체는 ‘나’인 것 같다. ‘술’이란 물질이 ‘나’란 생명체를 땡길 리는 없다. 물론 확실치는 않다. 술에 생명이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다시 생각해본다. 술 땡기는 날이 오늘만은 아니었다. 어제, 그제, 얼마 전 등등 지난날들을 돌이켜보니 ‘술 땡기던 날’들이 띄엄띄엄 자꾸자꾸 떠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잦고 길었던 기억을 찾기는 힘들었다. 


술 땡기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기뻐서, 슬퍼서, 화가 나서, 외로워서, 괴로워서, 답답하고 암담해서 등등 온갖 감정들이 등장한다. 정말 놀랍다. 인생만사 희로애락을 다 포용하는 술이라면, 마법의 음료다.

요즈음 특히 술 땡기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기왕이면 즐겁고 기뻐서 땡기는 술이길 원하지만 전반적인 시절 환경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오호, 애재라.


술 땡기는 날, 술 즐기는 문인 선배를 만났다. 중국음식을 유난히 좋아하고 어떤 식당을 가든 동파육이나 오향장육 중 하나를 꼭 주문하는 멋쟁이다. 중국집의 실력은 두 요리에서 드러난다는 게 그의 소신인데, 그가 나고 자란 곳이 인천의 중국인촌 부근이다.


이번에는 동파육을 먹으며 수상한 시절을 실컷 욕했는데, 선배는 소동파의 인생 후반기가 왜 멋졌는지 맛깔나게 설명했다. 다소 장황한 설명의 핵심은, 그가 먼 시골로 쫓겨나 노년을 보냈기 때문에 위대한 시인 소동파가 되었다는 해석이다.

우리는 소동파가 개발한 음식으로 알려진 동파육을 먹으며, 시대가 우울할지라도 낙담하지 말고 맛은 맛대로 즐기자고 합의했다.

다음은 소동파가 동파육을 소재로 지은 시의 일부다.


항저우의 좋은 돼지고기

값은 진흙처럼 싸다

부자는 먹으려 하지 않고

가난한 이는 요리할 줄 모르니

아침 일찍 일어나 두 대접에 가득 채워놓고

배불리 먹으니 그대는 신경 쓰지 말게나


모든 시가 그렇듯이 많고 깊은 의미가 함축돼 있으리라. 하지만 ‘좋은 돼지고기 값이 진흙처럼 싸다’는 구절이 가장 가슴을 파고들었다. 돼지고기 값이 진흙처럼 쌌던 시절이 있었다니, 부럽고 또 부러웠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돌이켰다. 비싼 음식을 앞에 놓고 시대를 배 아파하기보다는 술과 안주를 배불리 먹으며 오늘을 즐기는 게 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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