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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Feb 24. 2023

점심은 힘이 세다

회식과 맛집순례자들이 가장 많은 도 

점심시간은 고민의 시간이다. 요즘 특히 더하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먹을까, 누구와 먹을까, 반주를 할까 말까… 같은 고민은 직장생활 내내 지속돼 왔다. 


요즘은 다르다. 일단 돈이 아깝다. 음식 값이 너무 많이 올랐다. 한 끼 쏘는 것쯤 별게 아니라고 여겼던 시절은 진즉 떠나갔지만 ‘내가 왜 이리 좀스러워졌지?’ 하는 자괴감은 지속된다. 식당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우리 회사 앞은 전통 있는 먹자골목이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식당과 술집들이 즐비하다. 폐업하고 개업하는 식당들을 보는 것도 다반사다.

 

어제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이 오늘 가보니 문을 닫았고, 몇 집 건너에서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인테리어에 분주한 식당들을 보는 것도 심심찮다. 둘다 안쓰럽다. 새 식당은 얼마나 갈까, 떠난 식당은 얼마나 손해를 봤을까, 하는 염려도 찜찜하다. ‘너나 잘해’ 소리를 들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폐업한 외식업체 수는 8만 2968개, 전년보다 2000여곳 증가했다(aT, 식품산업통계정보). 코로나19 사태로 홍역을 겪은 외식업계가 지난해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다 4분기부터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올해 들어서도 계속 안 좋은 징조가 수치로 잡히고 있다.


어떻게 해야 점심시간의 고민이 맛의 즐거움을 찾는 쪽으로 바뀔까. 마약 같은 안도감을 얻고자 유튜브를 보다가 조승연과 미키김의 유튜브에서 ‘서울 식당들의 힘’에 관한 대화를 봤다. 해외생활 경험이 많은 두 사람이 세계 각국의 식당과 음식문화를 소개하면서, 서울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외식의 힘’이 센 곳이라는 주장을 폈다. 이유는 이런 것이다.  


‘서울은 전 세계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는 특이한 도시다. 전통음식부터 가장 퓨전적인 메뉴를 창조하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다양성도 최고다. 현대사에서 가장 빠르게 식당이 변하는 곳이며 소비자들의 구성과 취향도 다이내믹하다.’ 

    

불과 얼마 전(10여 년 안팎)만 해도 외국에 나가면 그 나라 특유의 음식을 맛보려는 여행자들이 많았다. 우리만 아니라 세계의 여행자들이 그랬다. 지금은 글로벌 교류가 왕성하고 음식 교류도 많아 나라별 특징도 희미해지고 있다. 점점 뻔해지는 추세에서 벗어나고 있는 도시가 서울이며 한국의 식당들이라는 얘기를 들으며 은근 자부심이 싹텄다.


점심식사가 즐거워야 경제가 산다. 점심식사가 즐거워야 일할 맛이 나고 업무 효율도 높아진다. 점심을 점 하나 찍고 넘어가는 식사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 전 농경시대, 밤이 길고 먹거리가 부족했던 때의 사고다.  하루의 순환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노동 시간량이 줄어드는 현대사회에서 점심의 무게감은 그때와 다르다. 아침보다 맛있고 즐겁고 든든해져야 하는 게 점심이다. 물가를 체감하는 가장 직접적인 현장이 점심이기도 하다. 


한국은 외식의 기초체력이 좋은 나라다. 회식을 좋아하고 맛집 순례를 좋아하는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라는 것도 점심의 힘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런 점에서 오늘 점심은 즐겁고 맛있게, 돈 아깝지 않게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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