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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Dec 27. 2022

새해는 무엇인가

오직 사람만이 새해를 만들었다

새해는 2023년이다. 2022년의 다음해이고 2024년의 전 해다.

사람이 1년을 주기로 분기점을 만든 것은 1만~1만5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농사를 지으면서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야 했고, 자연의 변화 주기를 깊이 있게 관찰하면서 대략(그야말로 ‘대략’이었지만 날 수는 355~365일을 기준으로) 1년을 주기로 삼았을 것이다.

 

해의 움직임과 달의 움직임을 관찰해 날, 달, 해를 기준화해 일상생활에 활용한 것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았지만 율리우스력을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적용하게 된 것은 불과 100여년밖에 안 된다.

 

새해는 새로운 해, 새로운 태양이 떴다는 의미다. 해는 매일 새롭게 뜨는데 연도가 바뀐 첫 번째 날의 해는 새롭게 바라보고 각별하게 의미를 담는다. 오직 사람만이 달력을 만들었고, ‘새해’를 만들었고 그것이 올 때마다 새로운 걸 시도한다. 새해를 만들었으면 '헌 해'도 만들었을 법한데, 그러지도 않았다. 지나간 해를 ‘헌 해’라 부르지 않는다. 어제 떴던 해도, 1년 전이나 100년 전에 떴던 해도 헌 해는 아님을 알았던 걸까.


한 송년회 모임에서 “이제 모든 것을 만 나이로 한다니까 한 살 젊어진 것 아닌가”라는 농담이 나왔는데(많은 자리에서 그런 대화가 있었을 것이다), 어느 자리에나 등장하는 진지형 인간이 “그럼 우리가 갖고 있는 띠는 어떻게 되는 거야?” 하고 진지하게 물었다. 이런 자리에는 또 해설자가 등장해 간단히 해답을 내놓는데 그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공적인 서류는 이미 만 나이를 사용한 지 오래인데 무슨 상관이래. 만으로 통일한다 어쩐다 하는 건 그냥 선언적 구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만으로 하면 육체가 1년 전으로 돌아가나?”


별것 아닌 선언을 각별하게 의미 부여를 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심리가 작용한 때문이다. 한 살이라도 적었으면 하는 바람이 모두에게 작용하고 있는 것인데, 어떤 점에서는 새해란 기준도 마찬가지다.


성서에는 날마다 다시 태어나라는 가르침이 있고 동양 고전에도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라는 잠언이 있다. 날마다 잠을 깨는 건 쉽지만 날마다 다시 태어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보통 사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주기를 1년으로 바꾼다면 가능할 법도 하다. 날마다 다시 태어나려 애쓰는 이는 찾기 어렵지만 해마다 다시 태어나려 애쓰는 이들은 쉽게 볼 수 있다.


사람뿐이 아니라 단체나 조직, 기업이나 국가도 1년을 주기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며 다시 태어나려는 노력들을 한다. 새해는 그런 점에서 날이나 달과 다르다. 모두 같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유일한 날이 새해 첫날이다. 새해를 맞는 이들 모두 새로워지고 새 길 닦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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