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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Jan 12. 2024

마이홈, 아워홈

가족 전쟁이 종식되는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눈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됐다. 20대인지 30대인지 알 수 없는 (요즘은 40대까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청년들의 대화였다.

 

“걍 내집으로 가자.”

갑자기 ‘내집’이란 단어가 귀에 박혔다. 음식을 먹다가 목구멍에 뭔가 걸린 듯한 느낌을 숨기며 대화를 들었다. 그들은 자연스러웠다. “그래, 네 집으로 가자.”  


그들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자기가 사는 집이 ‘내 집’이지 누구 집이겠나. 이상하게 여긴 이유는 오직 하나, ‘우리 집’이란 말을 달고 산 익숙함 때문이다. 우리(나이 든 한국인들)에겐 ‘우리 집’이 익숙하고 ‘내 집’은 낯설다.


영어권에서는 ‘my home’이라 하지 ‘our home’이라 하지 않는다. 중국인들도 ‘我的家(나의 집)’이라 하고, 일본인들도 ‘私の家(나의 집)’이라 한다. 우리만 우리 집이라 말한다.


‘우리 집’을 직역한 아워홈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식자재 기업이다. 한국적 표현을 기업명으로 내세운 아워홈은 ‘혈연 카르텔’로 성장한 재벌기업이기도 하다.


아워홈의 전신은 LG유통이고 LG는 럭키(Lucky)와 금성(샛별, Gold Star)의 이니셜 합자로 만든 명칭이다. 이 그룹은 구씨네의 상인적 능력과 허씨네의 자본이 결합돼 ‘사돈’의 시너지를 만들어냈다. ‘세계에서 유례없이 사이좋은 사돈 기업’으로 승승장구했다. 2대, 3대로 승계하며 자손이 늘어나자 결국 기업(재산)들을 분할해야 했고, 2005년 양가가 협의해 적절한(?) 분리를 했다. 당시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틀어짐 없이 깔끔하게 나눴던 것이 큰 화제가 됐고, 어떤 점에서는 세계 경제사에 남을 만큼 희귀사례로 볼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생활용 소비재 중심으로 성장한 럭키(L) 계열사들은 허씨네(GS그룹)로 이동했고, 전자제품으로 삼성과 쌍벽을 이루던 금성(G) 계열사들은 구씨네(LG그룹) 소유로 남았다.


아워홈은 구씨네 계열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G와 GS 계열사에 모두 단체급식을 공급하며 식자재 업계의 메이저가 되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이어온 사돈, 친지, 혈연 네트워크 덕을 톡톡히 본 것이다. 고대, 중세시대의 혈연동맹을 방불케 하는 ‘내부 거래’로 성장한 기업, ‘아워홈’이 요즘 가족 전쟁을 격하게 치르고 있다.


고 구자학 창립자의 자식들 1남 3녀 간 분쟁은 법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극을 치닫고 있다. 장남(구본성)과 세 여동생(구미현·명진·지은)의 다툼이 법정을 오가며 경영권이 오락가락하는 동안 임원진의 교체도 반복되고 있다. 수년간 드라마를 찍듯 계속되는 다툼을 ‘고려 거란 전쟁’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


‘맛있는 우리 집’을 모토로 한 아워홈은 최근 HMR 시장 선점에 진력 중이다. 프리미엄 자사 브랜드를 ‘구氏반가’로 만들 만큼 가족 이미지를 중시하면서, 가족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다.


가족 문화를 상징해 온 ‘우리 집’ 시대는 급격히 저물고 있다. 인구는 줄고, 개별화, 소형화, 간편화 추세의 ‘내 집’ 시대가 왔으며 이에 맞는 음식은 HMR(간편식)이 되었다. 머잖아 ‘우리’는 해체될 것이고, ‘나’ 맞춤 가치가 등장할 것이니, 그즈음에 비로소 가족 전쟁(꼭 구씨네만의 일이 아니다)도 종식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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