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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Dec 29. 2023

어느 날

one day

‘어느 날’과 ‘어떤 날’은 같은 의미인 듯하면서도 느낌이 다르다.

의미가 같음은 번역으로 확인된다. 어느 날이든 어떤 날이든 영어로는 one day 또는 some day이다. 한자로는 모월 모일(某日)의 모일, 중국어로는 머우리(mouri), 일본어로는 머우지스(ぼうじつ)로 읽는다.


미묘하게 다른 느낌은 자국민들만 가질 것이다. 여러 날 혹은 수많은 날들 중의 하루, 1/n의 날이 어느 날이다. 어떤 날은 어느 날(1/n의 날)보다 조금 강한 느낌을 준다. 뭔가 다른 하루랄까, 반복해 지나가는 많은 날들 가운데 불쑥 혹은 슬쩍 튀어나온 날 같다.


one day를 ‘어떤 날’로 번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모월 모일도 마찬가지다. ‘어떤 날’보다는 ‘어느 날’로 번역하는 게 일반적이다. 믿기 힘들다면 영화나 문학작품들을 찾아 보시라. 어렵지 않게 one day와 마주칠 것이고, 어김없이 ‘어느 날’로 번역돼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그냥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날들 중의 하루다. 소설이든 영화든 다큐멘터리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one day, 어느 날’은 평화롭고 평범하고 다소 지루한 느낌마저 드는 날이다. 하지만 그날 이후 놀라운 변화가 시작된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들의 출발점이 ‘어떤 날’보다 ‘어느 날’에 길들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날을 기점으로 뭔가가(사랑, 사건, 범죄, 역사, 인생 등등) 달라진다는 전제에서 ‘어느’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즉, 그 어느 날까지는 대단한 무엇이 없었다는 얘기이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여러 날들 속 어느 날 이후 반전의 냄새를 풍기는 것이고, 반전은 평범하고 소박한 인생을 구가하던 당신과 나, 일상 속의 누구에게든 날아들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날을 보내고 다시 어느 날을 맞고 있다.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와 웃음 만발하는 이, 어느 날 멸망이 찾아와 절규하는 이, 어느 날 사랑이 찾아오거나 사랑을 차 버리거나 하는 순간부터 새날이 시작되고 새 인생이 열린다. 결국 어느 날 이전의 그 많은 날들은 모두 과거가 된다. ‘과거는 서론이다(셰익스피어의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간다.

2024년 새날이 시작됐다. 여러 날 중의 어느 날이다. 드라마틱한 무엇을 만들기 위한 서막이다. 동양식 운명론의 기저인 육십갑자로는 아주 센 해로 보인다. 갑(甲) 중의 갑, 용(龍) 중의 용, 청룡의 해로 하루하루가 남다를 것이라는 해석들이 즐비하다. 용은 12간지(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원숭이, 닭, 개, 돼지)에서 유일하게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동물이다.


어느 날 용꿈을 꾸었다. 그로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런 어느 날을 맞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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