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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Feb 02. 2024

이상한 주례사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갈까 말까 망설이다 간 결혼식장에서 이상한 주례사를 들었다. 이상한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시대에 결혼식도 별별 개성이 넘쳐나고 있는 고로, 굳이 따지자면 이상한 게 아닐 수도 있기는 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주례사를 띄엄띄엄 옮기면 대략 이런 내용이다.


“한평생 반드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지 마세요. 너무 인내하지도 말고, 어른들을 공경하고 배려하려고 지나치게 노력하지도 마세요. 더 즐거운 인생, 더 행복한 인생을 위해 결혼을 선택했는데, 뭔가 잘못된 선택이었다 싶으면 과감히 헤어질 결심을 하세요.”


경악할 주례사였고, ‘결혼은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선택이라고 못 박지 말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몸에서 경련이 일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는 생각과 저런 말을 주례사로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들이 맹렬히 싸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귀가 솔깃해졌다는 것, 올까 말까 망설이다 온 것은 참 잘한 선택이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한 것은 결혼식장 풍경이었다. 저런 이상한 축사를 들으면 웅성웅성 수군수군 해야 마땅한데, 그런 기색은커녕 하객들은 박장대소하며 즐거워했다. 나름 반전의 마무리가 있으리라는 기대와 분위기를 돋우려는 노력들이지 싶었다. 그리고 나름 반전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마무리가 나왔다.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람들입니다. 우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단 한 명으로서 유일한 몸, 유일한 성격, 유일한 사고를 갖고 있는 명인 명품입니다. 디올보다 내가 명품이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당당하게 출발!”

그러자 신랑신부는 어깨를 더 펴고 팔짱을 더 꽉 끼고 당당하게 출발했다.


과거 결혼식 축사는 늘 지루했다. 인내하고 살라, 부모를 공경하라, 친지들을 배려하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변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게 요지였다. 지루하고 뻔한 얘기가 빨리 끝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제 주례들도 알아차렸나 보다. 결혼이 꼭 한번이어야 할 이유는 없고, 너무 지나친 인내는 사랑이 아니며, 가족 친지들에게 내 인생을 바쳐서도 안된다는 것을.

 

이상한 축사가 이상한 것이 아님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은 필요 없었다. 지금은 가족 친지 이웃이 한 동네에 모여 살지도 않고, 4인 가족이 대부분인 시대도 아니다. 명절에 의무적으로 부모를 찾는 것도 아니고 2세를 갖는 게 필수인 시대도 아니다. 그렇게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시대, ‘핵가족’이 ‘핵개인’으로 분화하고 있음을 누구나 겪고 누구나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은 결혼식장을 나서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 출범한 새 가정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가늠해 봤다. 무수한 부부와 무수한 가정들의 역사를 살펴본 바에 따르면,결혼식 주례사를 가슴에 새기고 사는 이들은 없다. 가슴은커녕 발가락의 때만큼도 영향력이 없는 게 주례사였다. 굳이 해석하자면, 자기만의 삶을 가진 유일한 명품들인 까닭이다. 미래의 세상에서 주인공이 누구인데 누가 코치를 한단 말인가. 하물며 과거의 수법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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