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마지막에 무엇을 먹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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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포

마지막 달이 가고 있다. 여러모로 분주하다. 와중에도 밥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순댓국이고 밥상 위 화제는 김지미다.


김지미가 죽었다. 순댓국 두 숟가락째 국물을 넘기는 중에 ‘김지미가 죽었대’란 말을 들었다. 국물이 뱃속으로

따뜻하게 퍼져갈 때였다. 김지미와 죽었다는 말의 일체감이 왠지 모르게 어울려서 은근히 놀랐다. 이래도 되나.

‘죽었다’는 말은 ‘돌아가셨다’는 말의 평어일 뿐인데, 왠지 불경스런 느낌이 든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어서는 아니다. 뭔가 존경스럽게 살았든가, 일가를 이룬 이였든가 하므로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별세니, 서거니, 타계니, 작고니 말할 수는 없으니 그렇다.


그런데 분위기가 이상하다. 김지미가 죽었는데, 어떤 이들은 맹숭맹숭한 표정이다. 나잇대로 딱 구분된다.

30~40대까지만 해도 김지미를 알기 어렵다. 이름은 안다 해도, 당대의 명배우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밥

상머리 화제로 삼을 만큼은 아닐 게 분명하다.


고스톱을 치면서 6월 목단이 나오면 “김지미”라고 불렀던 세대가 있다. 그 세대 사람들은 ‘목단=김지미’인 것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목단을 김지미라고 부르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도 없었다(그것은 확실하다). 이상하긴 했다. 윤정희도 있고, 정윤희도 있고, 그보다 더 유명한 미인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김지미였는지, 의아했지만 따지지 않았다(정말 아무도 안 따졌다).


나는 어린 시절 영화를 많이 봤다. 미성년일 때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단골로 봤기 때문에 김지미를 (남

들보다 조금 더) 제법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시기에는 먼발치에서 그녀를 훔쳐보기도 했고, 그녀의 성격과 스타일과 개인사에 대한 취재도 더러 했기 때문에 제법 가까운 척하기도 했다. 스스로 세뇌시키길 ‘멋진 배우’, ‘목단=김지미’였다.


순댓국을 먹고 나오며 문득 궁금했다. 김지미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무엇을 먹었을까. 죽일까, 미음일까, 고령친화식일까. 지병이 있었다고 하니 한동안 정상 식사는 못했을 것 같다. 간편식이나 스테이크는 만무하다. 짐작컨대, 마지막 국물을 아주 조금 품위있게 넘겼으리라 넘겨 짚는다.


수많은 영화 속에서 김지미를 봤을 텐데 뭔가를 먹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다. 전도연이 슬픔과 분노를 삭이

며 우걱우걱 씹는 장면은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김지미도 윤정희도 그런 연기는 하지 않았나 보다. 그 시절에

는 먹는 것도 노는 것도 절제와 품위의 벽을 세우고 했나 보다.


올해의 마지막 달을 보내며, 김지미 선생의 마지막 날을 어림잡으며 우리가 결코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라는 새김질을 해봤다. 힘든 한 해였다. 아듀, 2025. 모두들 건강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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