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먹는 음식, 날마다 만드는 음식을 놓고 별나게 떠드는 시대다. 이른바 셰프 전성시대. 누구나 먹는 음식, 누구나 만들 줄 아는 음식을 놓고 별나게 떠드는 시대. 맛이란 저마다 다르게 느끼고 취향도 저마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마치 최고의 음식이 특별하게 존재하는 양 마구마구 떠든다. 이런 풍류,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덩달아 셰프에 관한 몇 가지 안줏거리를 만들었다.
셰프가 너무 인기인(다른 말로 엔터테인먼트)이 되어 조리사라면 모두 셰프로 통칭하는데 사실은 식재료 단계에서 고객의 식사 전후까지 모든 것을 책임지는 이들이 셰프(Chef, 총주방장)이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셰프를 대체하는 전문용어는 ‘칼잡이’였다. 요리는 일단 식재료를 손질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그 손질의 핵심이 칼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다. 식재료를 손질할 때 가장 중요한 (혹은 위험한) 것이 칼질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생선 요리가 많은 까닭이겠지만) ‘음식은 칼맛에서 나온다’는 말을 격언처럼 사용한다. 그와 비교해 중국은 ‘불맛’이라 하고 한국은 ‘손맛’이라 한다. 비슷한 문화권인 한-중-일 3국의 요리 방식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칼맛, 불맛, 손맛의 이면에는 요리의 형태와 식재료의 종류가 숨어 있다. 일본은 생선 요리, 중국은 탕·볶음 요리가 발달해 있다.
그런데 손맛은 무엇일까? 곰곰 생각하고 이리저리 취재해 본 결과, 한국은 채소 요리가 많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무치고 데치고 지지고 볶는 음식들이 어마무시하고, 식재료 중 채소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한국인 것이다. 이 결론이 의심스럽다면 세계 각국의 채소 소비량을 찾아보면 된다. OECD 국가(그나마 믿을 만한 통계가 잡히는 나라들)에서 1인당 채소 소비량 1위 국가가 한국이다. 어느 특정한 해가 아니라 통계를 잡아온 이후 쭉… (참고로 2위는 호주, 3위는 뉴질랜드 순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음식의 진수는 ‘채소를 칼로 다듬은 뒤 손으로 무진장 버무리는’ 데 있다. 그러다 보니 요리용 칼(부엌칼)이 엄청 투박한 나라이기도 하다.
세계의 셰프들은 ‘일본제 칼’을 가장 선호한다. 요리는 칼맛이라는 나라답게 세계에서 가장 날선 칼을, 가장 멋지게 만드는 나라가 일본이란다. 서구권에서 칼의 선두를 달렸던 독일을 넘어선 유일한 나라도 일본이다.
요리는 칼맛에서 나온다는, 무시무시한 나라에 맞서 중국은 불을 잘 다루는 요리 솜씨로 일찌감치 세계를 평정해 왔다.
무릇 요리란, 인간이 불을 발견하면서 시작된 고품격 예술로 중국 음식은 세계 도처에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요즘 미국과 유럽에서 칼맛의 간결 담백함이 불맛을 따라잡고 있다는 소식이 종종 들려 온다.
그에 비해 손맛은 영 더디다. 손맛이 세계적으로 뻗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하늘의 별만큼 많다. 그 중에서도 계량화를 못해서 통일된 맛을 못 낸다는 비판이 압도적이다. 과연 그런지, 나는 수긍하지 못한다. 오히려 ‘음식은 손맛’이라는 말 자체가 예술적으로 느껴져 은근 놀라기도 한다. 비과학적이고 비통계적이고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손맛을 대놓고 자랑하는 것도 창조적이다.
이처럼 비과학적이고 비통계적이고 비기록적인 손맛을 과학적이고 통계적이고 기록적으로 수치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제법 많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손맛 속에는 정과 사랑과 연민 같은 것들이 오묘하게 배어 있다는 게 또 하나의 설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들을 홍보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든다(꼭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세상의 맛있다는 음식들이 그렇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것도 아니다. 맛을 음미하는 사람들의 감각 역시 그렇게 계량적이고 체계적이고 수학적이지 않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으리라. 그러니 셰프의 일은 셰프에게 맡기고 우리는 대충 맛있게 먹으며 대충 재밌게 사는 게 더 낫다,는 게 내 생각이다.
칼맛이든 불맛이든 내 입맛에 맞아야 맛있다. 내 입에 맞는 맛들은 대부분 엄마가 만들어준 맛이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손맛이라 한다. 한마디로 손맛 만세다. 손맛이란 말을 만들어준 채소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