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앞에서

짜장과 짬뽕처럼

by 포포

점심을 때우는 자리, 짬뽕을 앞에 놓고 후배가 물었다.

“백종원과 황교익의 논쟁 들어봤죠? 누구 말이 옳아요?”

이게 무슨 짜장과 짬뽕 같은 얘기지?

질문의 요지가 무엇인지 헷갈려 많은 단상이 오갔다. 모호한 질문이야말로 많은 단상을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단상이 제일 먼저 들었다. 그 다음에는, 왜 백종원과 황교익이라고 물을까? 라는 단상이 떠올랐다. 이름의 순서가 유명세 순위인 듯 싶었다. 대개 이름의 순서는 지위, 나이, 가나다 순으로 표시하는 게 예의인데 유명세가 그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다는, 씰데없는 생각도 들었다.


그 다음에는, 백종원과 황교익이 논쟁을 벌였던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짧은 순간 떠올려 봤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하거나 토론을 하거나 논쟁을 벌인 장면은 떠오르지 않았다. 짬뽕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어쨌든 대답을 빨리 해야 했다.

“둘이 무슨 일이 있었나? 언론이 싸움을 유도하고 대중들끼리 편 갈라 싸우는 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껄?”

까칠하다 느껴졌는지, 후배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예를 들면 떡볶이가 한국의 상징적 음식인양 부풀려졌다는 정치적인 얘기, 막걸리 맛을 구별하기 힘들다는 지적 등등 황이 백을 공격하는 것 말예요. 팩트는 맞는지, 타당한 비판인지….”


비로소 무슨 질문인지 이해되었지만 일일이 설명하기가 애매했다. 두 가지 사례는 (먹거리라는 공통점 외에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 더 그랬다. 일단, 떡볶이 업계에 상당한 정책자금이 투입된 것은 사실이다. MB와 그의 부인 역할이 컸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이런 답이 가능하다.

“떡볶이에 대한 황의 말 자체는 사실에 가깝지.”


지역마다 다른 막걸리 맛을 일일이 구별해 맞추기 어려운 것도 사실에 부합한다. 그 역시 황의 지적이라 하니 이런 답이 가능하다.

“흔히 참이슬과 처음처럼의 맛을 구별한다는 이들이 있는데, 정말 그 차이를 알고 있을까? 대부분 기분의 문제요, 단순한 취향이나 습관적 선택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말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지만 특별하고 깊은, 정직하달까 싶은 맛들은 있지. 전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구분을 해낼 만큼 노력하고 예민해질 필요도 있으니까 백종원의 말도 틀리지 않아.”


이런 젠장, 결국 회색인이 돼버렸다. 모호한 질문의 덫에 걸려든 게다. 기분 탓인지 짬뽕 국물도 밋밋하기만 했다. 면이 불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짬뽕에는 해물이 많았다. 재료는 풍부했지만 국물에 깊이 배이지 않은 느낌. 돈을 쓰고도 효과를 못 본 것은 기술의 실패다. 역시 짬뽕은 홍콩반점인가?


대한민국 프랜차이즈 시장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나 홀로 주장하고 있는 홍콩반점이 떠올랐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아버지의 아버지 대부터 고민해온 선택을 일거에 날려 버린 곳이기 때문이다. 그보다 한 세대 앞서 등장한 ‘짬짜면’도 (한국인의 창조성을 유감없이 발현한 메뉴였다) 중대 사건이었지만, ‘짬뽕 전문’을 내세운 홍콩반점은 기상천외한 역사요 사건이었다. 바로 백종원의 작품이다.

짜장이냐, 짬뽕이냐, 오랜 전통의 즐거운 고민거리를 과감하게 도려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짜장과 짬뽕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는 중국집의 대명사 아닌가. 게다가 식당 이름도 아연실색이다. 홍콩반점이라니,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퍼져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름. 놀라운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는 사업 치고는 너무 언밸런스 아닌가? 시장 역사 최초의, 짜짱은 없고 짬뽕만 있는 곳을 말이다.


모두가 실패할 것이라 했지만 홍콩반점은 (오래 끌지도 않고) 단박에 성공했다. 불과 10년 전의 일이다. 이후 당연한 듯이 짬뽕전문점들이 줄을 서 등장했다. 시대의 트렌드를 제대로 읽었다는 분석은 결과론이다. 트렌드보다 흥미로운 것은 효율성, 즉 투자 대비 효과에 대한 관점이다.

사업가는 효율성에 집착한다. 하지만 진짜 사업가는 창조성에 올인한다. 무모한 DNA와 효율적 수단의 결혼 배경은 단순하다. 이 사업가의 생각, 간단히 정리하면 이랬다.

‘짬뽕은 탕요리, 짜장은 볶음요리다. 두 요리는 전혀 다른 주방시스템을 요구한다. 탕으로 단순화시켜 비용을 아끼고(공간과 설비를 반으로 줄였다) 그 차액을 식재료에 투입해 국물 맛을 높인 것이다. 양보다 질의 시대가 왔으니까.’


그것 참... 짬뽕의 격이 그렇게 한순간에 달라지다니. 내 인생도 그렇게 바뀔을까. 짬뽕을 앞에 놓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 모든 것이 모호한 질문 덕이다. 아, 왠지 짜장에게 미안하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볶음요리의 진수이건만, '오직 짜장' 전문점은 왜 등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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