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서점이 물었다

니가 장사를 알아?

by 포포

내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서점이 두 개 있었다. 그보다 더 큰 중소 도시에는 중대형 서점이 또 두 곳쯤 있고 조그만 서점들 (이를테면 문구점과 같이 병행하거나 참고서 중심으로 장사하는) 몇 곳이 있었다.

어느날 문득 왜 서점들은 이렇게 장사하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입구부터 큰 창문까지 수많은 포스터들이 붙어 있고 거기에 붙은 요란한 문구들이 도시 뒷골목 네온사인들과 뭐가 다른가 싶었다. 함께 서점을 드나들던 친구들에게 "꼭 저런 걸 붙여놓아야 장사가 되나? 아무 것도 장식하지 않고 책들이 잘 눈에 띄게 진열하는 게 더 낫지 않아? 내가 나중에 서점을 하게 된다면 그렇게 해봐야지" 하는 말을 했다가 친구에게 핀잔을 들은 기억이 난다.


두 친구가 한마디씩 하길,

"니가 장사를 아냐? 저렇게 광고를 해야 손님을 끌지." 했고, 그 옆의 친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모르긴 해도 서점 주인의 뜻이라기보다는 도서 유통의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조건들이 있지 않을까. 예를 들면 참고서 회사나 잡지사, 출판사에서 전국 서점에 포스터를 보낼 텐데, 그걸 안 붙이면 안 되겠지..."

흠,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속이 깊은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강원도 속초에서 놀라운 서점을 봤다. 어릴 때 지나치듯 꿈꿔 봤던 바로 그런 서점이 거기에 있었다. 이건 뭐지? 소년 시절 내가 하던 얘기를 들었나? 드넓은 창문은 완전 투명했고, 바깥 벽 어디에도 장식이나 포스터 같은 게 없었다. 들어가보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내부는 더 간결해 보였다. 깔끔하고 단정하게 책을 분류해놓은 방식들도 창조적이었다. 일단 찾고 고르고 둘러보고 숨쉬기가 편했다.

손님은 없는데 중년의 주인이 카운터에서 어떤 책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장사도 안 되는데 참 편안한 표정이군' 하는 생각을 하며 한 권의 책을 계산하고 나왔다. 그냥 가기 아쉬워 밖의 정경 하나를 찍고 돌아섰다. '동아서점. 개점 1956.' 딱 이 문구만 있었다.


요즘 어디를 가나 'Since'란 문구가 쉽게 눈에 띈다. 신뢰를 홍보하는 수단으로 세월을 이용하는 것인데,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식상하기도 하고 더러는 미덥지 못한 느낌을 받을 때도 많다. 그에 비하면 이곳의 '개점 1956'은 너무나 힘이 있고 단단했다.

속초동아서점.PNG

그러고 또 얼마가 지났는데 <알뜰신잡>에 그 서점이 나왔다. 김영하 작가가 그곳을 들른 것이다. 음, 그는 나보다 많은 책을 사들고 나왔고 그것을 알뜰신잡 출연진들에게 전해 주는 게 TV에 나왔다. 은근 신기. 동아서점의 주인과 대화를 나눠볼걸, 괜히 덤덤하게 나왔었나 싶었지만... 그거야 속초에 또 가면 될일이다. 듣자하니 1956년 학교 앞에서 문구점으로 시작한 서점이었다고 한다. 내가 만난 (점잖고 편안해 보였던) 주인은 그 문구점 창업자의 아드님인 듯. 지금 그의 아들딸이 운영 중이라니 3대 가업인 셈이다.


동아서점의 주변에는 별게 없다. 공터와 단독주택들, 한적한 버스정류장, 4차선 도로, 그 건너편의 고등학교가 그나마 서점의 입지 이점이랄까. 하지만 요즘 고등학생들이 서점에 들르기는 하는지 의문스러우니 (우리가 알고 있는) 장사의 입지로서는 좋은 조건이 아니다. 이런 깔끔한 장사는 서점이라서 가능할까, 지금 이 시대라서 가능한 걸까. 동아서점 개점 1956을 뒤로 하면서 온갖 상념이 몰려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괜히 맑기만 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갖는 줄 안다. 그러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온갖 것을 덕지덕지 붙이게 된다. 알고 보면 장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없으면 큰일나는 줄 알며 나중에는 그런 것이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산다. 그렇게 이상하고 불필요한 무엇인가를 달고 붙이고 끌고 다니는 우리는 사람인가 괴물인가. 동해안의 담백한 서점 하나가 그런 질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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