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구에게 배웠다

면도하는 법

by 포포

내게 처음 면도하는 법을 가르쳐준 친구는 봉구다.

고등학교 때 우리는 목욕탕엘 함께 다녔다. 면도를 하면서 이제 어른이 다 됐다고 뿌듯해 했다. 내 면도질이 어설펐는지 봉구가 시범을 보였다. 말하자면 나는 늦되었고 봉구는 진즉 (육체적인)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밑에서 위로 해야 잘 깎여. 위에서 아래로 하면 털이 자란 방향이라 끝까지 안 깎이잖아."

음, 듣고 보니 과학적이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자책하면서 역시 봉구는 똑똑하구나 생각했다.

봉구는 때를 미는 법도 알려 줬다. 때도 밑에서 위로 밀어야지, 위에서 아래로 밀면 개운하지 않다고. 역시 봉구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 말대로 살았다.


한참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된 내 아들이 말했다.

"아빠, 면도를 왜 거꾸로 해? 그렇게 하면 피부 상해. 박지성이 광고 못 봤어?"

한참 세월이 또 흘렀다. 역시 성인이 된 딸이 말했다.

"손을 비누로 먼저 씻고 세수를 해야지 아빠는 왜 얼굴부터 씻고 비누질을 해?"

놀라워라. 듣고 보니 그랬다. 손을 깨끗이 씻어내지도 않고 물세수부터 하다니.

역시 역사는 진화하나 보다. 아들딸의 말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이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아직도 나는 봉구가 가르쳐준 방식으로 산다. 위에서 아래로 하는 면도는 영 개운치 않고, 아래에서 위로 박박 밀어야 목욕한 것 같다. 피부가 상하든 말든 내 기분이 개운한 게 최고니까. 그때마다 봉구가 떠오른다. 허벅지가 내 허리둘레만 했던 봉구, 웃을 때 복이 팍팍 터져나올 것 같던 봉구, 가끔씩 뻥을 쳤지만 금세 들통나곤 했던 봉구... 도통 소식이 없다. 당구 한 게임 해야 하는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호박 네 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