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꼬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홉 살 꼬마가 어느 날 산사에 있었다. 작은 암자였다. 절을 엄청 했다. 여름이었고 온몸에서 비오듯 땀이 흘렀다.
마당을 지나다 부엌을 보게 되었다. 청년 행자승이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행자는 조그마한 호박을 도마 위에 올려 네 토막을 냈다. 한 토막은 그대로 접시 위에 올렸고, 또 한 토막은 국으로, 다른 한 토막은 조림으로, 다른 한 토막은 구이로 만들어 접시 위에 올렸다.
처음에는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행자의 상차림을 멍하니 지켜보던 아홉 살 꼬마. 행자가 반상을 들어 노스님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이 스님의 밥상임을 알았다. 아, 스님들은 식사를 호박으로 하는구나. 꼬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세월이 흘렀다. 꼬마는 청년이 되었고 스님들이 호박뿐만 아니라 밥과 나물들도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세월이 흘러 꼬마는 중년이 되었고, 고기와 술을 마시는 스님들이 제법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나이가 드는 만큼 많은 것을 배워 갔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식품회사에 취직했다. 음식과 식품에 관한 일이 그에게 자꾸 주어졌고 많은 셰프들을 접촉하게 되었다. 맛있고 멋있고 깊이 있는 요리들을 수없이 접하게 되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 유수의 음식과 식품 들을 맛보고 개발하고 전파하는 일을 하면서 바야흐로 중년에 접어들었다.
중년의 아홉 살 꼬마와 술 한잔 하면서 옛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식품회사에 함께 입사했던 친구 얘기를 들려 주었다. 2년 정도 함께 생활했던 친구가 어느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출가했다는 것이다. 그 순간 하필 호박 네 쪽 요리(?)가 떠올랐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가 머무는 절을 찾아가 보겠다고 작심했다. 아홉 살 무렵 작은 암자의 부엌에서 보았던 방식 그대로 호박 네쪽 요리를 해주는 자신을 상상한 것이다. 유명 셰프들과 맛있고 화려한 음식들을 만들고 맛보는 일을 수없이 해왔지만 "아직까지 호박 네 쪽에 견줄 만한 요리는 발견하지 못했다"는 고백이었다.
그 꿈,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다. 다만 이런 일이 있었다. 얼마 전, 스님 친구가 회사를 찾아온 것이다. 중년이 된 친구들은 달라진 서로를 확인하며 식당을 찾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김치찌개를 선택했고, 주인아주머니에게 특별 주문을 했다. 김치찌개에 꼭 호박을 넣어달라고. 그랬더니 스님 친구가 한 가지 더 부탁했다. 찌개 바닥에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달라고.
아홉 살 꼬마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내 운명은 그날 결정된 거 아닌가, 가끔 생각하곤 해요. 우리 몸속 어딘가에 다들 그런 꼬마들이 숨어 있을 겁니다. 그 꼬마가 문득문득 나타나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곤 하지요."
(이 꼬마는 현재 CJ그룹에 근무하고 있고 아홉 살 시절에 찾아갔던 암자는 해인사 백련암이다. 그러니까 그 호박 네 쪽은 성철스님이 드신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