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 친구들
그 애가 서 있으면 왠지 든든했다
내게도 골키퍼 친구들이 몇 있었다. 그 친구가 골대 앞에 서 있으면 왠지 모르게 든든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골키퍼 친구는 유형이다. 핸드볼이나 축구나 무슨 경기든지 유형이가 골대를 지켰다. 초등학교 5학년 체육대회 때 상대반과 비겨서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나는 무조건 우리반이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유형이가 있으니까. 모든 공은 몰라도 한두 개는 반드시 막아 내리라 믿었다. 왜냐하면 유형이는 골키퍼를 하기 위해 태어난 친구였으니까(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믿었다). 핸드볼은 말 그대로 손으로 공을 던지는 운동인데 우리 담임 선생님은 핸드볼 골대에 유형이를 세워놓고 발로 (핸드볼) 공을 차 넣는 훈련을 했다. 유형이는 그런 막무가내 훈련도 우탈하게 소화한 타고난 골키퍼였다.
그런데... 그날 페널티킥 5개를 유형이는 하나도 못 막았다. 우리 반이 졌다.
유형이는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우리 곁을 떠났다. 목장을 한다고. 너무 일찍 학교를 떠난 건 아닌가 싶었지만... 어쩌다 우연히 길에서 만나면 예전처럼 반가워하며 실없는 미소를 지었다. 배시시 웃는 게 행복해 보였다. 남들 다 다니는 학교를 그렇게 비슷하게 다니는 것만이 인생은 아니라는 걸 말하는 듯 싶었다.
현호는 다른 골키퍼 친구들에 비해 키가 아주 작았다. 키가 작으니 공을 공중으로 띄우면 무조건 골인시킬 수 있을 듯했다. 물론 그건 착각이었다. 현호는 메뚜기처럼 날아다녔다. 웬 점프를 그리 잘하는지... 구석으로 날아가는 공까지도 현호는 (메뚜기 뛰듯이 점프를 하며) 척척 잡아냈다.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척척' 잡아냈다.
현호는 깡다귀가 셌다. 싸움 기술도 천재적이었다. 현호가 싸우는 걸 본 애들은 "날아다닌다"고 말했다. (나는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 장례식 때 친구들이 와서 밤새 포커를 쳤는데 그날도 현호는 날아 다녔다. 새벽녘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날 즈음, 현호는 앞에 놓인 돈다발을 죽죽 세더니, 자기몫을 약간 남기고 나머지 돈을 뚝 떼어서 잃은 친구들한테 던져주었다. "난 요만큼만 먹을랜다." 그리고 군말 없이 일어섰다. 역시 골키퍼였다.
또 하나의 골키퍼 친구는 종숭이다. 종숭이는 원래 골키퍼가 아니었지만 6학년 때 (종숭이가 속했던) 4반에 골키퍼할 만한 선수가 없어 차선으로 골대를 지킨 듯 싶다. 날아오는 공을 손바닥으로 한번 툭 친 다음 가슴으로 받았다. 늘 그랬다. 아주 안전하게, 또 차분하게 골대를 지켰다. 종숭이는 늘 차분했고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시험을 볼 때도 검증과 검산을 반드시 해보며 안전하게 정리하는 유형이었다.
중학교 때 오금실이란 지리 선생님이 있었는데, 종숭이를 가리켜 '신사 중의 신사'라고 칭찬했다. 약간의 질투심이 일었지만 종숭이가 신사임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종숭이는 건축사가 되었다. 뭐든지 차분하고 안전하게 신사적으로 처리하던 성격 그대로 녀석이 지은 집들은 (역시 한번도 보지 못했지만) 단정할 듯 싶다. 나중에 내가 집을 짓게 되면 내 성격에 맞게 설계해 주겠다는 약속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녀석도 안 잊었을 거다. 골키퍼 출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