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호는 우리 옆집에서 살았다. 우리집에는 대여섯 가구가, 은호네에도 서너 가구가 세들어 살고 있었다. 은호네 옆에는 우리보다 두어 살 아래의 붓둘이네가 살았고, 은호는 집에서 바우로 불렸다. 그때는 몰랐다. 학교에서는 은호라 불리는데 집에서는 왜 바우로 부르는지. 붓둘이의 이름도 학교에서 부르는 뭔가가 있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여간 그렇다. 바우는 스물 대여섯 살쯤 되었을 때 읍내 한복판에 방패가게를 차렸다. 감사패, 공로패, 기념패 등등을 만들어주는 가게다. 군인들이 많은 동네에서 제법 장사가 잘 되는 업종이었다. 성명, 소속, 공로나 감사의 말 등을 새겨넣는 패 제조업이랄까. 그리고 1년쯤 뒤 은호는 가게를 내놨다. 들어가는 노동력에 비해 마진이 너무 적다는 이유였다.
그 전에 바우네는 식당을 했었다. 식당은 무척 손님이 많았다. 바우네가 엄청 부자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1~2년 만에 식당을 넘겼다. 바우에게 물었더니 "손님은 많았지만 손해를 이만저만 본 게 아니다"고 답했다. "주방을 잘 몰라서... 주방장만 믿고 장사하다가" 결국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장사를 했다는 얘기였다.
바우는 시장 한복판에 또 가게를 내 생선을 팔았다. 역시 시장 장사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며 새벽마다 서울 가락시장에서 생선을 떼어와 신나게 생선팔이를 했다. 장사가 제법 잘 됐다,고 들었다. 하지만 바우는 1년도 안돼 그것을 내놓았다. 가락시장까지 매일 오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닌데다 생선 같은 신선식품은 전문가가 할일이지 우리처럼 대충이들이 섣불리 뛰어들면 안되는 거라고 후회했다.
다음에는 비디오가게를 차렸다.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 없는 직종이고 자본금도 많이 들지 않을 뿐 아니라 실컷 영화를 볼 수 있으니 나름 괜찮지 않냐는 거였다. 그러나 1년 여 만에 문을 닫았다. 비디오가게가 너무 많아 경쟁력이 없고 대여료는 한없이 떨어지기만 하니 전도가 막막하다는 거였다.
다음에는 감자탕집을 차렸다. 역시 먹는 장사가 제일이다 싶었는데 몇 개월 안가 "요즘 손님들은 점점 입맛이 까다로워져 힘들 뿐만 아니라 취객들을 대하기가 정말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택시부에서 잠시 운전기사를 했다. 처음에는 "이게 제일 속이 편하다"고 했지만 "보아하니 택시는 도시에서 해야지 시골에서는 낙이 없다"며 도시로 떠났다. 몇 년 도시에서 택시를 몰았나 보다. 다시 시골로 내려왔다. 내려와서 잠시 당구장을 했다. 잠시였다. 당구장에 이어 게임방도 했다. 역시 잠시였다.
이후 또 옷가게도 했고 호프집도 했고 노가다도 했고 통닭집도 했다. 아, 직장생활도 했다. 지적기사 자격증이 있어서 측량과 관련된 일도 한 적이 있다. 내가 채 기억하지 못하는 업종도 있고 내가 모르고 본인만 겪었던 직업도 있음직하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한 우물을 파라고. 한 우물 못파고 방랑 전전하는 바우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이 세상에 바우처럼 많은 직업, 많은 장사를 해본 친구 있으면 나와 보라...
그 많은 직업과 장사를 전전한걸 보면 바우의 성격이 어떤지 답이 나온다. 바우는 끈기가 없다. 본인도 인정한다. 대신 바우는 호기심이 많고, 뭐든지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친구다. "그거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은 MB가 아니라 바우가 할 말이다. 불알친구인 내가 보증한다.
바우의 성격과 특징, 장점은 또 있다. 그 많은 장사를 전전하면서 얻은 업계 분야별 지식이 제법 쏠쏠하다. 전전했던 직업이 꼭 해될 것도 아니고 어떤 점에선 경험의 폭이 어마어마하게 넓은 것이다. 바우는 붙임성이 좋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친구다. 친구나 선후배들이 한결같이 녀석을 좋아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바우의 최근 직업은 직업소개소였다. 아마 바우의 인생에서 가장 오래도록 한 일인 듯 싶다. 직업천사나 다름없는 바우, 아니 은호. 수많은 업종을 섭렵했으니 사람들의 직업을 안내하는 일이야말로 녀석에게 딱 들어맞는 거 아닌가. 나는 바우가 제 일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직업소개인들과 분명히 다른 차별점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바우, 아니 은호가 자랑스럽다. 그래서 늘 이렇게 읊조리고 산다.
아픔을 겪을 때마다 도와주지 못해서ᆢ 미안하다, 친구야. 하지만 자랑스럽다,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