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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Jan 08. 2024

어바웃 끝과 쉼

어바웃 시리즈


사람들은 늘 끝을 향해 달려가곤 한다. 입시의 끝, 학기의 끝, 한 해의 끝...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끝이 곧 목표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운동의 끝을 위해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종강을 위해 끝없는 시험범위와 과제를 견디는 대학생들, 성공적인 입시의 마무리를 위해 이 악물고 공부하는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나에게 끝은 너무나도 비장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허무하게 다가온다. 굳이?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나는 그렇다.



어렸을 때의 나는 끝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아니면 '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환상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때 단원평가를 치던 때가 생각난다. 시험 하나에도 울고 웃었던 나는, '이번 시험이 끝나면 유토피아가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야 지금의 고통에 대한 합당한 이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시험을 치고 나면? 한두 시간 편안하고 여유로울 수는 있어도, 그 다음은 또 같은 일상의 반복이었다. 끝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나에게 완전한 '끝의 유토피아'는 찾아오지 못했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는 이 불완전한 끝의 존재를 절감할 수 있었다. 이번 중간고사를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지만, 남아 있는 수많은 수행평가와 내신들... 무엇이 '끝'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하나가 끝나더라도 또 다른 과제를 완수해야 하는 내 상황을 보며 막막할 때도 많았다.

결국 어찌어찌 해냈지만!

이런 '끝'에 대한 환상은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부작용도 존재했다. 바로 내 '끝'에 대해 온전히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험 기간의 나는, 시험이 끝나기만 하면 모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고, 마음껏 놀러 다니고,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체력은 그걸 뒷받침해 주지 못했다... 그걸 차치하고라도 그냥 모든 게 귀찮았다. 결국 끝이 오긴 왔는데 나는 방구석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지금이 아니면 제대로 놀 수 없을 것 같은데'라는 의무감에서 밖에 나가 노는 것은 내가 지금 끝을 맞이해 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결국 이 때의 끝은 나에게 또 하나의 과제를 던져 줌으로써 나의 끝에도 만족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결국 시간이 지나며 나는 '끝'에 대한 환상을 점점 내려놓기 시작했다. 끝이 온다면... 모든 게 잘 끝나 있을 것 같고, 영원한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 같지만 결국 또다른 시작이 다가오고 결점 하나 없는 온전한 안식을 누리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냥 '끝'이라는 단어 대신 '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막이 끝나면 잠깐의 쉬는 시간이 있을 것이다... 완전한 끝은 없겠지만 그래도 더 많이 자고, 쉬고, 놀 수 있는 잠깐의 쉼이 내게 허락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순간을 잠깐씩 즐기며 (쉽지는 않다) 다음 출발을 준비하는 과정까지 즐길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다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지프스 신화가 계속해서 등장하게 된다.



어차피 떨어질 돌을 왜 그렇게 힘들게 굴리는가? 어차피 끝이 와도 다시 생겨날 시작이 있는데 왜 돌을 굴려야 하는가?

시지프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제우스의 눈 밖에 나서 평생 돌을 끌어올리는 일을 반복해야 했던 시지프스의 상황은 끝이 없는 고통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때 시지프스는 하나의 변화만으로 제우스의 형벌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니 그건 바로 순간을 즐기는 마음가짐이다. 이때부터 제우스의 형벌은 더 이상 형벌이 아니게 된다.

내가 이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내 삶의 모습,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유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삶은 형벌이 아니지만 .. ㅎㅡㅎ

선택권도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야 하는 시지프스의 삶에는 유일한 선택지가 있다. 이 순간을 즐길 것인지, 아니면 순간순간을 고통으로 흘려보낼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끝보다는 쉼이 조금 더 잘 다가온다. 완전한 끝은 없는 세상에서 내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건 돌을 끌어올리는 고통의 순간이고, 산 정상에 돌멩이를 얹어 놓았을 때의 잠깐의 휴식이다.

어쩌면 내가 끝이 아닌 쉼을 선택한 건 아직 내가 끝의 정의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치만 내가 살아 오면서 느낀 점은, 고등학교 졸업으로서 하나의 마무리를 맺었지만 그 때 배웠던 것들과 만들었던 인연은 아직까지 이어진다는 것, 내 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책을 쓴다기보다는 새로운 막이 시작된다는 느낌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끝은 완전한 끝이 되지 않는다. 그저 새로운 막을 올리기 위한 하나의 소단원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이전의 막과 지금의 막은 여전히 긴밀한 상호작용을 맺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끝은 어떤 의미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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