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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ppy Dec 25. 2023

어바웃 자기충족적 예언

어바웃 시리즈

 우리는 예언자가 아님에도 스스로에게 많은 예언을 하곤 한다. 이러한 예언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번 학기에는 처음으로 전공 수업을 들으며, 이상심리학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배울 수 있었다. 성격장애를 배우며 제일 흥미로웠던 부분은 편집성 성격장애에서의 자기충족적 예언 부분이었다.


 자기충족적 예언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결국 그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가 원래 기대했던 대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우리의 기대가 현실화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저 사람은 ~할 거야' 라는 나의 신념은 자연스레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면? 아무 생각이 없던 상대방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상대방은 처음부터 ~할 생각이 없었지만, 내가 상대방을 ~하게 만든다. 

 결국 나의 예언은 충족된다. 사실 본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만 말이다.



 이는 피그말리온의 이야기와도 유사한 듯 하다. 원래는 조각상이었던 존재를,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연인이라고 생각하며 다정히 대한다. 이를 갸륵히 여긴 신은 조각상을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인간은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이 결코 허투루 있는 말은 아님을 느낀다.



 그러나 자기충족적 예언을 '성격장애'라는 부정적 측면에서 처음 접한 만큼, 이 글에서는 먼저 자기충족적 예언의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수업에서 배운 예시는 다음과 같다. 편집성 성격장애를 앓고 있는 환자들은 다음과 같은 왜곡된 신념을 가진다.

(1) 사람들은 악의적이고 기만적이다

(2)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나를 공격할 것이다

(3) 긴장하고 경계해야만 나에게 피해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집성 성격장애 환자 A씨의 자기충족적 예언을 살펴 보자. 모든 사람들이 위협적일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A씨. 그는 팀플을 하기 위해 새로운 조원들을 만나게 되었다. 조원들은 모두 합쳐 4명. 팀플이 끝나고 한 조원 B씨가 살갑게 다가와 묻는다.

 "A씨, 팀플도 끝났는데 저녁 한 끼 하실래요?"

겉으로는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대화 중에서 어떻게든 내 험담거리를 찾아내려는 속셈이겠지! A씨는 경계하며 말한다.

"아니요, 전 그냥 집에 갈게요."

머쓱해진 B씨.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같이 밥을 먹거나 카페에 가자는 등 친해지고자 하는 시도를 보내지만 경직된 A씨의 반응에 지쳐간다. 결국 마지막 시간, B씨는 더 이상 A씨에게 밥을 먹자고 하지 않는다. 형식적인 인사만 하고 헤어질 뿐이다. 여기서 드는 A씨의 생각은

"거 봐, 처음 한두 번만 예의상 권할 뿐이지 결국에는 나를 싫어할 거라니까?"


 참 슬픈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예시를 보며 나는 마냥 낯선 상황처럼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어쩌다 하루의 시작이 별로인 날, 예를 들면 비가 왔고 지하철을 놓쳤으며 신발이 물에 젖어 찝찝한 날. '오늘은 시작이 안 좋네'로 시작해 결국 '오늘 하루는 최악일 거야' 라는 생각이 되는 날이 있다.

 내 단점 중 하나인 부정적 사고가 똬리를 트는 날이다. 왜인지 그런 날에는 모든 게 최악이어야만 할 것 같다. 분명 더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우울한 음악을 듣고, 사람들과도 이야기하지 않고 부루퉁한 표정으로 집에 들어와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날이다. 아주 가끔은 이런 날도 필요할 수는 있지만..


 이게 내게 대체 어떤 도움이 되는가? 내가 맞았다는 기쁨인가, 아니면 맨정신으로 최악을 마주하기 어려워 자기 자신을 예언자로 만들어 버리는 회피에서 오는 안도감인가?

 결국 내가 바꿀 수 있는 하루라면, 이왕 지내는 거 긍정적으로, 좋은 면들을 찾으며 지내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어쩌면 이러한 자기충족적 예언은 용기의 부족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정적인 상황에 온전히 놓일 용기가 없는 것.

 내가 최선을 다했고,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었음에도 그만한 결과가 나오지 못할 때는 분명 존재한다. 누군가가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럴 때가 있다! 그럼 '이 사람과는 맞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야 한다. 그렇게 몇 번 넘어가다 보면 나와 꼭 맞는 짝꿍을 만날 수도 있고, 그 경험에서 내가 배우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이 부정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될까 봐 회피한다면 어떨까. 내가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만한 결과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면... 확실한 부정으로 만들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노력은 나를 배신할 수도 있지만 포기는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자기충족적 예언 역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나를 보호하는 행위가 아닐까?




 그런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자기충족적 예언이 나쁘게만 쓰이지는 않는다. 한 실험에서는 또래의 남자 대학생들을 불러모은 다음 여성과 30분간 통화를 하게 만들었고, 통화 전에는 통화할 여성의 사진을 미리 제시했다.



 첫 번째 집단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두 번째 집단에는 평균 이하의 외모를 지닌 여성의 사진이 주어졌다. 통화를 할 때 남성들의 태도는 어땠을까? 당연히, 아름다운 여성의 사진을 본 남성들이 훨씬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긍정적으로 통화에 임했다. 여기까지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남성의 태도 뿐만 아니라 여성의 태도도 바뀌었다는 것이다!

 동일한 여성이 두 집단의 남성과 통화를 했다. 그런데 예쁘다고 믿는 남자들과 통화한 조건에서 통화한 경우, 다른 사람들이 듣기에 더 매력적으로 변화했다! 상대방이 믿는 것처럼, 더 매력적인 여성이 된 것이다.



 이 사례는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 자기중촉적 예언을 꽤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생각하는 대로 된다'처럼 세상을 긍정적으로 가스라이팅해버리면 어떨까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한 번 더 웃어줄 수 있는 태도, 넘어지더라도 주인공에게 필요한 역경이었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태도... 들이 모이면 어느 순간 우리는 정말로 우리가 원했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지 않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예언자가 되곤 한다. 2023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예언자가 되어 왔고 찝찝한 예언을 성공시켜 왔는가? 예언가가 아니라 행동할 수 있는 활동가가 된다면 우리의 삶의 질은 한층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예언의 방향을 바꾸어 본다면...

 한 번 더 웃고, 날 향해 찡그리는 것 같은 세상의 표정도 윙크라고 웃어넘길 수 있는 용기와 여유를 한 번 더 내보면 어느 순간 세상은 정말로 나에게 웃어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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