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하지만 제거해야 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을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은 무척 난감한 일이다. 그것이 질환이라면 더더욱.
병원에서도 눈꺼풀암이라는 것 외에는 모른다고 하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인터넷을 뒤지는 것뿐이다.
눈꺼풀에도 암이 생길 수 있다
다래끼, 염증이 지속되면 의심해 봐야 한다.
주로 고령자에게서 관찰된다…
하나같이 어디에서 모아 온 정보들뿐, 진짜 걸린 사람이 있긴 있나 싶을 정도로 실제 사례는 보이지 않았다.
참 못된 이야기지만,
나와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은 더 큰 좌절감으로 다가오기 마련이다.
동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얼마나 재수가 없으면'이라는 늪에 빠지게 되니까.
일본 생활 16년 만에 도쿄에 암 전문 병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인 친구들에게 이야기해 보면, 주변에 암 환자가 있는 몇 명을 빼고는 대부분 처음 들었다고 했다.
나도 계속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소개받은 병원은, 오다이바의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 암 전문 병원이다.
이 유명한 관광지구 중심에 암 병원을 세우기로 결정한 사람은 분명 T일 것이다. 넓은 부지에, 주택가와는 떨어져 있으면서 교통은 편리하니 딱이라고 생각했겠지. 암 환자와 가족들이, 여행의 설렘으로 가득한 인파와 두 갈랫길로 나뉠 때의 공허함은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병원 입구부터 가발, 니트 모자, 두건을 쓴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 모두 정도는 다르지만, 다들 비슷한 처지예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안과 담당의 선생님은 지난 병원에서 종양을 반 밖에 잘라내지 못한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다 제거했다면 지난 병원의 검사 결과에 의존해서 치료를 시작해야 하지만, 남은 부분이 있으면 다시 한번 채취해서 암 전문 연구소에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으니까.
부분 마취 수술은 두 번 다시없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잘 참아볼게. 지금이라도 오진이었다고 말해줘.
조직검사를 위한 수술을 받았다. 지난 병원처럼 도떼기시장 같지도 않았고, 정돈된 흐름 속에서 모든 과정이 차분히 이어졌다.
종양의 크기를 정확히 알기 위한 두경부 MRI도 찍고, 만약을 위해서 머리끝에서 복부까지 CT촬영도 했다.
남은 건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
2주 후,
또 암이란다.
악성임은 확실하고 어떤 종류인지는 알 수 없단다.
똑같은 수술, 똑같은 결과.
이러려고 눈꺼풀을 두 번이나 절개한 건가.
그나마 새롭게 알게 된 것은 MRI로 확인한 종양의 크기다. 두 번의 조직검사로 떼낸 부분보다 더 큰 부분이 눈 아래쪽으로 뻗어 있다고 했다.
2주 동안 몇 번이고 상상했던 "이제 깨끗합니다."와는 전혀 다른 전개.
"그리고 또 하나 발견된 게... "
싫어. 또 하나도 싫고, 발견이라는 말도 싫어.
"CT 결과에서 이하선(귀 아래에 위치한 침샘)에도 작은 전이가 발견됐어요."
증상도 없이 스스로 우연히 발견한 암인데. 조기 발견한 것 하나만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이?
"그럼 치료는... "
"눈은 아직 깨끗하지만, 종양을 제거하려면 눈도 같이 수술해야 합니다."
"눈이요?"
"눈꺼풀과 안구, 전이된 부분 모두 제거해야 합니다."
멀쩡하지만 제거해야 한다…
태어나서 들은 말 중에 가장 황당한 말이다.
"안구 적출은 큰 수술이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당연한 겁니다.
가장 확실한 건 제거 수술이고, 수술을 거부할 경우에는 방사선 치료부터 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방사선은 암의 종류나 크기에 따라 효과가 전혀 없을 수도 있어요. 암세포는 빠르면 몇 주, 몇 달 만에도 분열하기 때문에, 방사선 치료를 하고 회복하는 동안 암이 얼마나 진행될 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가족분들과 충분히 상의해 보시고, 3일 후에 다시 봅시다."
보기가 두 개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설명의 반 이상은 '방사선 치료는 리스크가 크다'는 이야기였다.
안구 적출.
눈 하나를 잃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 말로만 들었던 의안을 쓰게 되는 걸까. 시야는 얼마나 좁아질까.
지금까지 쌓아 온 것들—
일본 생활, 일, 육아를 지금처럼 할 수는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