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폭발기에 찾아온 지연과 퇴행
나는 늘 내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사람의 감정이나 상태의 변화를 알아차릴 때가 많았으니까. 속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10년 넘게 큰 어려움 없이 지내온 것도, 표정이나 눈빛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것에 맞춰 반응했기 때문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 많은 엄마들이 그렇듯,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내가 잘한다고 믿었던 것들은 정신머리와 함께 증발해 버린 것 같다. 정작 가장 소중한 내 아이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때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가 의미 있는 단어를 말하지 않고 사람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게 된 건… 일주일 전? 이주일 전? 그동안 대체 얼마나 무관심했던 거야.
“죠죠야, 이제 우리 밥 먹을까? ”
“… 바마그… 까? “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한다는 ‘반향어’.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 읽었던 육아서에서 반향어도 언어 발달의 한 과정이라는 설명을 본 적이 있었다. 책에서는 분명, 처음에는 들리는 그대로 말을 따라 하다가 서서히 상황과 상대에 맞게 대답하고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고 했었는데. 간단하게나마 대답을 하던 아이가 다시 반향어로 돌아갈 수도 있는 건가?
온 신경이 곤두서서 일을 할 수가 없다. 나의 시선은 아이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쫓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일이 아닌 아이에게 집중해서인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예전과 다르게 초점 없는 눈빛, 울거나 멍하거나 두 가지뿐인 표정, 그리고 어딘가 불편한 듯 두세 번 연달아 깜빡이는 눈. 평소에는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가끔이지만, 미디어를 켜고 이삼 분도 지나지 않아 눈 깜박임이 급격히 잦아졌다.
언어 퇴행에 더해 유아 틱(tic)으로 의심되는 증상까지… 무엇이 우리 아이를 이렇게 만든 걸까. 미디어의 일방적이고 과도한 자극? 가족 간에 상호작용이 부족해서? 아니면 어린이집 휴원으로 인한 사회적 단절?
급한 마음에 소아과에 전화를 걸었다. 코로나 때문에 문의 전화가 많았는지, 잠시 기다려 달라는 자동음성이 끝없이 흘러나왔다. 겨우겨우 전화가 연결되어 아이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하니, 병원 직원은 짜증 섞인 말투로,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발열 증상이 있거나 급히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진찰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놈의 코로나, 코로나!
우리는 먼저 미디어를 완전히 차단하기로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정보육과 재택근무의 멀티플레이를 실현시켜 줄 마지막 동아줄이었지만, 이제는 아이의 언어 발달 시계를 멈추게 한 원흉일 뿐이다.
그리고 미디어의 빈자리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과 명예를 다소 포기하는 방법으로 채우기로 했다.
"팀장님. 저희 아이가… 이런 상황이라, 어린이집 휴원이 끝날 때까지만 업무를 조금만 나눌 수 있을까요. 부족한 부분은 아이를 재우고 나서라도 처리하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
"잘 알겠어요. 힘들 때 도와야지 "
역시 위기는 사람과 함께여야 이겨낼 수 있는 것일까.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업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그만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늘려 갔다. 목이 터져라 그림책을 읽어주고, 눈을 맞추며 노래하고, 춤추고, 쓰고, 그리고, 놀고...
습관이란 게 참 무서워서, 아이는 잘 놀다가도 불쑥 리모컨을 찾거나 꺼진 TV 화면을 가리키며 짜증을 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에 미디어라는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되뇌며, 더 열정적으로 온 힘을 다해 서 아이와 놀아 줬다.
다행히도, 틱이라 의심했던 증상은 며칠새에 사라졌다. 아이의 눈빛도 제법 활기를 찾았고, 표정도 조금씩 다양해졌다. 내가 하는 만큼 따라와 주는 아이에게 그동안 무슨 짓을 했던 거지.
말은 좀처럼 늘지 않았지만, 한 달이 넘게 아이를 미디어 세상에 던져두었던 걸 생각하면 금세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원하고 친구들을 만나면 모든 게 좋아질 거야.'
두 달 만에 교육기관의 휴교가 종료됐다. 코로나 때문에 생긴 여러 가지 제한도 완화되었다. 코로나의 상황은 하나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일본 정부도 더 이상 일상을 멈추고 제한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어린이집은 잃어버린 두 달을 만회하려는 듯 떠들썩하고 활기가 넘쳤다.
“죠죠네 마마! 오랜만!
신발 진짜 예뻐요! 어디서 샀어요? “
아이와 같은 2세 반 친구, 에나짱이 말을 걸었다. 코로나 전부터 말이 빠르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두 달 새에 타인을 칭찬하고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에나짱뿐일까. 같은 반 친구들 모두 흔히 말하는 언어 폭발기(18-24개월 전후)에 걸맞게, 조잘조잘 수다를 떨고 있었다. 저 뒤에서 묵묵히 스티커 붙이기를 하고 있는 건 우리 아이와 0세, 1세 반 아기들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전염 바이러스가 더 다양해진 건지, 아니면 집에서만 지내면서 면역력이 초기화된 건지. 등원이 다시 시작되자 어린이집 아이들은 기관에 처음 입소했을 때처럼 돌아가면서 감기에 걸렸다. 가여운 코로나 세대들.
아이의 콧물감기 때문에 소아과를 찾았던 날, 때마침 생각난 척 아이의 언어 발달 상태에 대해 물어보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 뒤, 어떻게 말해야 이 엄마가 상처를 덜 받을까 고민하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음... 아직 yes, no 반응을 못하는 건 9개월 이상 지연이 있다고 봐야 해요. 이 시기에 반향어가 나왔다면 더욱…
하지만 이맘때는 어느 날 갑자기 말이 터지기도 하니까, 일단 36개월까지 기다려 봅시다 “
느리지만 기다리자…
일본은 유아의 발달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편이라, 생후 36개월까지는 발달 검사나 치료를 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사사건건 개입하기보다는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방식이 나의 가치관과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내 일로 닥치고 보니, 한국에서는 차고 넘치는 발달센터나 발달 검사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36개월이 될 때까지 변화다운 변화가 있기를 기도하는 것뿐.
타국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일도 육아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다 내 탓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