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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Oct 21. 2022

재원확인서를 쓰다

아이들의 재원확인서가 왔다. 올 한 해가 거의 다 가긴 했나 보다. 고민 없이 '재원을 희망합니다'에 표시를 했다. 익숙한 듯 쓱쓱 적어 내려가는 내가 문득 낯설어졌다. 두 아이의 엄마이고 보호자라는 사실의 무게가 새삼 느껴졌다.


'보호자'라는 표현은 아직까지도 익숙하지 않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무언가를 결정해서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때나 소아과에서 접종할 때 접할 수 있는 단어다. 적지 않게 접했던 단어인데 유난히 오늘에 그 말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던 건 왜일까.



아이들이 아이에서 어린이가 되어 가는 게 보인다. 하루가 무섭다. 그만큼 아쉽다. 천천히 자랐으면 좋겠는데 시간이 천천히 갈 리 없다. 언제 저만큼 컸을까 싶다가 나도 그만큼 늙어가고 있구나 싶다.


크다는 마지막 재원확인서가 될 것이다. 내년이면 이제 일곱 살이 된다. 미운 4살은 아니었는데 부디 ㅣ친 7살도 아니길 바란다. 그럴 것 같지도 않아서 걱정은 되지 않는다. 기억이 미화돼서 미운 4살이 전혀 기억나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크다보다 두 살 많은 아이를 키우는 동네 엄마가 6살 후반부터 쓰기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학교 가기 전에 익숙해질 준비가 필요한데 5살은 너무 빠르고 7살은 너무 늦다 했었다. 진작부터 8칸 공책을 사뒀지만 꾸준하게 쓰는 것이 어렵다.


간단한 단어는 곧잘 쓰고 어려운 단어도 알려주면 잘 쓰지만 아직 글자 크기가 들쑥날쑥이다. 지금만 볼 수 있는 귀여운 글씨라 공책에 쓰는 연습을 미뤄 왔던 것도 있다. 내일부턴 하루에 한 단어씩이라도 써보자고 해볼까 싶다가도 삐뚤빼뚤한 글씨에서 가지런하게 바뀐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쉽다.


재원확인서 하나에 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이제 잘 시간인가 보다. 그만 자야겠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같이 누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듣다가 잠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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