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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Feb 04. 2023

너, 오늘 참 낯설다

발레 수업이 있는 날이다. 아이들을 문화센터에 데려다주러 간 남편한테서 연락이 왔다.

"크다는 발레 안 간다고 해서 안 들어갔어요."


무슨 일인가 싶었다. 무언가 정해지면 열심히 하는 아이인데 안 간다고 했다니? 이례적인 일이었다.


크다가 "난 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라고 말해서

남편이 "일곱 살이니까 이해해 줄게."라고 했단다.



돌아온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눈치를 보니 딱히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서 "그래, 그런 날도 있지."라 말하고 넘겼다.


동생만 발레 수업에 보내놓고 아빠랑 여기저기 구경을 했나 보다. 아빠랑 둘이서만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서 좋았겠다 싶었다.




둘째 작다 친구가 놀러 오기로 한 날이라서 크다도 친구네 집에 가서 놀기로 했다. 엄마나 아빠도 없이 혼자서 친구네 놀러 가는 건 처음이었다. 솔직히 걱정은 좀 됐는데 서로 자주 오며 가며 놀았어서 괜찮겠지 했지만 아니었다. 크다를 데리러 가려고 전화를 넣었는데 들려오는 얘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들이 다퉜고 친구는 울었다고 했다. 서둘러 크다 친구네 집으로 갔다. 친구는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들어보니 둘이 게임을 했는데 무승부였다고 한다. 게임을 하기 전에 친구는 내키지 않았지만 크다에게 양보를 했고 그러면서 친구 마음이 불편해졌었던 것 같다. 서로 이기고 싶었는데 승부 나지 않(동시에 들어가서) 친구는 화가 나서 울었다고 했다. 물론 크다도 화가 났다. 다시는 친구네 놀러 오지 않겠다고 했다. 속상함이 뚝뚝 묻어났다.


친구는 울고 우리 집도 아닌데 엄마도 없다. 나였어도 많이 당황스러웠을 것 같다. 그래서 아이는 상황이, 그리고 친구에게 서운한 마음이 더 많이 들었을 수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상황에서 울지 않고 있어 준 아이가 고마웠다. 물어보는 말에 툭툭이었지만 할 말은 하는 아이가 대견했다. 벌써 이만큼 컸구나 싶기도 했다.

뒷모습도 새초롬하구나. 기분 탓인가.


남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늘은 '크다의 첫 일탈'이 있던 날이었다. 남편은 크다한테 삼춘기가 온 것 같다며 충분히 존중해 주자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다짐을 하는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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