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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Mar 07. 2023

보통 사람처럼 보이고 싶습니다

디스크 이야기 #14

진단 4주 차에 접어들어서야 이제 출근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는 해봐야 알 수 있는데 그동안 출근은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았었다. 상태가 호전된 것 같아도 출근은 무리였다. 그나마 일주일이라도 추가 진단을 받아서 다행이었다. 병가가 끝나기 2~3일 전에야 희망까지는 아니어도 히읗 정도는 생긴 느낌이었다.


통증이 있으면 걷는 운동도 하지 말라고 병원에서 당부를 했던 터라 대부분은 눕고 앉고 서있기를 반복했다. 누워있더라도 한 자세로 오래 있을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여전히 다리는 저릿했지만 전보다 통증도 줄어들긴 했고 방사통도 줄어든 것 같았다. 어기적이지만 전보다 걷는 속도도 붙은 듯했다.

'그래, 이제 출근을 해보는 거야.'




출근 셔틀을 타고 얼마 되지 않아서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5분도 안 된 것 같은데 큰일이다. 자리가 넓지도 않고 패딩도 입은 터라 자세를 사부작 바꿔가며 버티고 버텼다. 잠이라도 오면 좋으련만 잠도 오지 않는다. 시간이 참 길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출근하는 길, 날이 많이 밝아졌다


셔틀에서 내려서 회사까지 걸었다. 오랜만이다. 에 걷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앞질러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리에 혼자 남았다. 회사 근처에서 공사하던 건물도 제법 구색을 갖췄다. 겨우내 뚝딱거리며 끝날 것 같지 않던 공사도 끝이 보인다.


설 연휴가 끝나고 하는 첫 출근이었다. 그때부터 쭉 연차도 쓰고 병가도 내서 벌써 한 달이 넘어버렸다. 사람들이 대체 얼마만이냐며 괜찮냐고 물었다.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요'라는 말로 반복해서 답을 했다. 앵무새가 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었지만.


노트북을 꺼냈다. 전원을 안 가져왔다. 마우스도 없다. 정말 노.트.북.만 가지고 왔다. 오랜만에 출근이라 전날 밤에 가방을 챙긴다고 챙겼는데 이럴 수가. 그 와중에 사원증 챙겨 온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노트북은 켜지겠지 싶었는데 안 켜진다. 한 달 넘게 켜지 않으면 얘도 방전되는 거구나. 아하하하하.


다행히 옆 팀 언니야한테 빌리기로 했다. 언니야 자리로 갔다. '안녕하세요'하고 옆자리 짝꿍하고 인사를 했다. 잠시 주춤하다가 없는 자리에서 주섬주섬 전원이며 마우스며 하나씩 챙겼다. 자리로 돌아와서 전원을 꽂으니 그제야 노트북이 눈을 떴다.

덕분에 고급진 마우스 체험을 했다


눈을 뜬 노트북은 1월이란다. 2월 끝자락이었다. 얘야, 지금은 2월이 다 끝나간단다. 정신 차리렴.



잠깐 얘기나 하자고 시작했던 회의 두 넘겨버렸다. 리 덕분에 내내 앉고 서기를 반복했다. 앉으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도 저렸다. 서있으면 허리는 덜 아픈데 다리는 더 심하게 저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그저 빨리 끝나길 바랐다.


오후가 되자 하체 전체가 저리기 시작했다. 방사통으로 왼쪽 다리와 발은 저림이 일상이었고 오른쪽도 발만 그랬었다. 하체가 다 저리다니. 덜컥했다. 다른 증상이 생겼다. 좋지 않은 징이다.



어기적 다니는 내 모습에 책임님 한 분이 안쓰럽다는 듯 웃으셨다. 러더니 스탠딩 데스크가 있는지 알아봐 주시겠다며 여기저기 알아봐 주셨다. 통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는데 보기 좋게 실패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지만 퇴근 길에 마주한 나무 끝자락에 걸린 달도, 하늘을 파랗고 붉게 물들인 노을도 참 좋다. 덕분에 잠시 잊어본다.

어쨌든 퇴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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