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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Mar 07. 2023

보통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디스크 이야기 #15

본진이 아닌 출근은 여전히 새롭다. 전에는 해가 뜨기 전이라 어둑했었는데 이제는 해가 슬슬 떠있다. 병가 내고 병원출퇴근하며 다녔던 시간이 짧지 않았음을 느꼈다. 2월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


출근길에 전달받은 자리로 눈치껏 가방을 던지고 이짝 팀장님께 인사를 먼저 드렸다. 안쓰러운 얼굴로 괜찮냐고 물으셨다. 힘들면 재택을 하라고 하셨다. 마음 같아서는 "네"하고 바로 가방 챙겨서 나오고 싶었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일단 해보고 필요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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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잘했다, 박책임 ■-)



본진이 아니라 역시나 자리가 불편하다. 키보드도 없고 모니터가 없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났다 반복하니 앞사람 눈치가 보인다. (눈치를 주지는 않았) 허리 사정을 아는 분들이 서서 일할 수 있게 도와주셨다. 덕분에 앉아서 일하다가 자리를 옮겨서 서서 일하는 형태가 되었다. 창가 구석에 위치한 스탠딩 책상은 아늑했다. 벽과 스탠딩 책상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타닥타닥 키보드를 쳤다. 서서 일해도 위화감은 전혀 없었다. 키작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 어쩌다 서서 일하는 모습이 발각(?) 되면 성큼성큼 다가와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고저마다의 경험담을 풀어준다. 고맙긴 했지만 다리가 많이 저린 타이밍에 걸렸을 때는 아주 곤욕스러웠다.


전날부터 시작된 하체 저림은 끝날 줄을 몰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출근한 지 이틀 만에 두 시간 휴가를 냈다. 눈물이 났다.


점심시간에도 어기적 다니니 배식을 받아 자리까지 가는 길도, 다 먹고 나서 퇴식구까지 걸어가는 길도 멀었다. 동료가 무거운 그릇을 덜어줘서 그나마 퇴식구까지는 한결 수월했다. 고마웠다. 사무실 어기적어기적 돌아왔는데 앉지도 서지도 못하겠길래 입에 단 거나 넣어야겠다 싶어서 다시 내려왔.


기다리면서 뭘 마실까 하다가 밀크티로 정했다. 아이스로 한 잔은 적으니 두 잔 마셔야겠다 싶었는데 전에 없던 메뉴가 보인다. 차례가 될 때까지도 답을 내지 못했다. 쿠키 하나를 집어 들고 주문을 해버렸다. "밀크티 두 잔에 딸기 밀크티 한 잔이요."


창가 어드메 자리를 잡았다. 옆을 흘긋거리며 잠시 눈치를 보다가 먹기 시작한 후로는 '에라 모르겠다' 싶어서 마음을 놓았다. 앉은자리에서 딸기 밀크티도 쿠키도 다 먹고 밀크티도 반 잔 넘게 마셨다. 자리를 정리하고 남은 밀크티만 주섬주섬 챙겨서 한 잔만 주문한 사람처럼 유유히 나왔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



입에 단 것이 들어가니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했다. 점심시간에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층이 제한되어 있다. 계단으로 다니다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행복한 사람이 건강하다.'

행복해서 건강한 걸까, 건강해서 행복한 걸까.

오래도록 환자인 나는 후자에 한 표를 던져본다.



두 시간 먼저 퇴근해서 병원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생각도 못했다. MRI를 다시 찍게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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