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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쓰담 May 23. 2023

백일장이 열렸다

버스정류장에 붙은 백일장 소식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반가움은 잠시였 시일이 지나 아쉬웠었다. 참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그랬다.


그러다 얼마 전에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안내문을 만났다. 이번에도 접수 끝났다. 전 날까지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가려다 순멈춰 섰다.

"대회 당일 현장 접수 가능!" (무려 빨간 글씨였)


가보고 싶었다. 왜인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우연히 대회장 가는 길을 붙이고 계시는 분들과 마주했다. 붙여놓으신 길을 따라 올라갔다. 처음이라 많이 헤맬 줄 알았는데 덕분에 수월해졌다. 계단이 많았다. 다시 생각해도 참 건강해지는 계단이었다.


계단 끝에 올라서 펼쳐진 풍경은 장관이었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다 같이 오고 싶었다. 엄마도 모시고 오면 좋을 것 같았다.


운동회 준비되는 듯했다. 대회장과는 거리가 꽤 있었지만 알록달록 옷을 입은 아이들이 보였다.


현장 접수를 하니 원고지와 펜을 주셨다. 물론 식순지와 함께 원고지 쓰는 법이 적힌 안내문도 주셨다. 접수 테이블 끝에 책자가 있길래 관심을 보이니 입상작이 실렸으니 도움이 될 거라며 챙겨주셨다.


개회 선언과 함께 간단하게 식이 진행되었다. 시제도 공개되었다. 봄비, 안경, 책장, 징검다리였다.


시제를 정하고 생각을 정리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햇살 따뜻했다. 운동회가 시작되어 아이들 소리도 들렸다. 평화로웠다. 마이 탁 트이는 듯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생각나는 대로 적어 내려가며 글을 다듬었다. 미리 준비한 연필과 지우개가 빛을 발했다. 원고지도 오랜만이었다. 볼펜으로 써야 해서 바짝 긴장했는데 원고지 쓰는 법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서 라웠다. 따로 챙겨 온 휴대용 접이식 매트 덕분에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사실상 매트가 일등 공신이었다.


재미있 을 쓰는 동안 핸드폰을 보지 못하 했다 것이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시대라며 "핸드폰 쓰시면 안 됩니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ChatGPT 사용을 방지하기  것 같았다. 낯설었다. 여기서도 ChatGPT를 경계해야 한다니.



"벌써 다 했어요? 잘 썼나 보다!"

제출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옆에 계신 분이 말씀하셨다. '끝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그늘막이 있는 자리를 선점했다. 같이 앉아도 되냐며 따로 두 분이 오셨다. 한 분은 두 번째 참가라고 하시며 5년 안에는 되지 않겠냐고 하셨다. 하시는 모습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한 분도 백일장에 참가해 본 적이 있다고 하셨다. 두 분은 '시상이 떠오른다'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문학적인 표현이고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입 밖으로 한 번도 내어보지 못한 표현이었다. 자연스레 표현하시는 두 분을 보며 놀라웠고 감탄했다. 지금조차.


같이 자리했어도 인사 정도만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다시 만나면 반가울 것 같았다. 무슨 용기였는지 성함도 여쭤봤다. 어쩌면 있을지모를 두 분의 작품을 알아보고 싶었다.



20년 만에 백일장이라 여러모로 감회가 새로웠다. 가보고 싶단 생각 하나에 준비도 뭐도 없이 갔지만 생각지도 않게 많은 걸 느끼고 얻어왔다.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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