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가질 순 없거든"

일어서 있지도 못해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by 박쓰담

알쓸신잡 3에서 김영하 작가의 인생관으로 시작된 얘기 중에 유시민 작가가 유희열에게 한 말이다.

맞다. 모든 걸 가질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걸 갖기 위한 사람처럼 항상 열심히 살았다.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의 내 생활은 내 공든 탑으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보다 첫 기일이 나에겐 더 큰 폭풍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다시 상담을 시작했고 상담을 하면서 '지금 내 삶이 내 공든 탑이구나'를 처음 느꼈다.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많이 힘들다. "힘내"라는 말은 위로가 되기보다는 되려 더 힘 빠지는 말이었다.

낼 힘이 없는데 어찌 힘을 낸단 말인가.


사실 끝을 모르고 달렸던 업무로 인해 한동안 아빠는 잠시 잊고 (묻어두고) 지냈다. 그러나 이내 지쳤고 나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6개월 동안 회사에 나를 말 그대로 갈아 넣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내꺼가 있으면 이직은 쉬워"라고 지금 일하는 분야에서 10년 동안 탄탄하게 커리어를 다진 언니가 얘기했다. 맞는 말이다. 그치만 개발에서의 5년, 품질에서의 5년(그중에서도 거진 3년은 출산/육아휴직이다) 동안 내 것이라 할 만한 것이 지금은 없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넘어왔던 업무는 말 그대로 불구덩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이 업무로 이직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이슈가 생겨서 고객과 맞대어야 하는 업의 특성상 욕을 먹고 시작해야 하고, 잘해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강해졌다. (실제로도 그랬다) 할수록 누군가 나를 끌어내리는 듯한 기분이었고 나는 소모적인 것보다(일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노라고 사람들에게 여러 번 얘기한 적이 있다.


상담 선생님이 나는 지금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에 있다고 했다.

이 긴 터널을 지나고 나면 다른 터널이 와도 통과할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라고.

부디 그랬으면 싶지만 지금 내가 있는 이 터널은 어디서 끝이 나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나는 일하는 내가 좋다. 그러나 업무가 성향과 너무 맞지 않다 보니 계속 퇴사를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는 "너 자신에게 집중해봐, 너를 들여다봐야 해"인데 알고 있지만 쉼 없이 돌아가는 톱니바퀴인 나로서는 그 시간을 만드는 것 초자 어렵게 느껴진다.


무작정 그만두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가도 정작 내 성격상 그러지 못한다.

가능한 오래 일하고 싶다. 그치만 지금 이 일은 아니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들을 제외하고 내 삶은 꽤나 안정적이다. 정확히는 내 가정이라고 해야겠지만.

한없이 자상한 남편, 힘들기는하지만 예쁘고 웃음 줄 일이 많은 우리 아가들 :-)


사실 객관적인 지표로만 보면 남부럽지 않게 지내고 있고 살고 있다.

집집마다 개개인마다 들여다보면 속 시끄럽지 않은 구석이 어디 있겠냐 마는 나는 내가 제일 속 시끄럽고 복잡하다.


다 가질 순 없겠지. 그치만 난 지금 다 갖겠다고 이런 몸부림을 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좀 더 즐겁게, 아니 사실 즐거운 것까지는 바라진 않는다.

그저 두렵거나 엄두도 나지 않는 마음으로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어서 있지도 못해 주저앉아 있는 나에게 나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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