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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저나무 Dec 01. 2016

9와 숫자들│수렴과 발산

노랫말로 수렴한 음악은 희망으로 발산한다


음악가 : 9와 숫자들

음반명 : 수렴과 발산 (Solitude And Solidarity)

발매일 : 2016.11.26.

수록곡

1. 안개도시

2. 언니

3. 엘리스의 섬 (Song For Tuvalu)

4. 전래동화

5. 드라이 플라워

6. 검은 돌

7. 싱가포르

8. 사랑했던 경우엔

9. 다른 수업

10. 평정심

11. 이별 중독


  지리멸렬한 세상사를 보며 어쩌면 노래란 아무 힘도 없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통기타를 든 딴따라가 사랑과 평화 그리고 반전(反戰)을 노래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현실은 그 시절보다도 훨씬 잔인하고 차가워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느끼는 이가 비단 나뿐만이 아니란 것을 분명 알 텐데도 9와 숫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연대(連帶)를 통해, 우리와 우리가 속한 세상은 끝 모르는 발산을 이어갈 힘을 얻습니다." 송재경(예명 '9')의 음반 소개글 일부이다. 고독으로 수렴하는 사람은 언젠가 벽에 부딪힌다며, 시선을 돌려 고독한 이들의 연대를 이루어내자고,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진보를 향해 나아가자고 말한다. 우리가 상처만 남은 몸뚱이를 무기력하게 끌고 가는 동안, 밴드는 <수렴과 발산>을 통해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을 노래하고 있었다.


"끝없는 고독은 이제 안녕"
엘리스의 섬 (Song for Tuvalu) Official M/V

 첫 번째로 긍정을 노래하는 곡은 "안개도시"다. 화자 '나'는 자욱한 안갯속에서 언젠가 그것이 걷힐 것을 믿는다. 그리고 '누구도 우리를 부정할 수 없게' '끝까지 노래하'면서 '곁에 있는 널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고독으로 수렴하던 화자가 연대의 힘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고독이라는 알에 갇혀 있던 이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껍질의 파괴라는 과정이 수반된다. "언니"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언니의 그늘은 연대로 나아가고자 하는 화자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다. 연대란 인격 대 인격, 동등한 지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언니로 상징되는 타인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간 진정한 연대는 불가능하다.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Tuvalu)의 사연에서 시작된 노래인 "엘리스의 섬 (Song For Tuvalu)"은 화자가 고독으로 수렴해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우리 모두가 사실 나라가 수몰될 위기에 놓인 투발루인과 다를 것이 없다며, 지금이야말로 연대의 힘이 필요할 때라며 조용한 외침을 뱉어낸다. 하지만 '내'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던 건 아니다. '똑같은 교훈', '희미한 감명'이라며 무시했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가 어느새 나의 삶과 합치되는 순간을 발견한다. 사랑이라는 축복을 가벼이 여겨 이내 사라지게 만든 '슬픈 설화'를 다른 이들은 반복하지 않길 바라는 소망이 "전래동화"에는 담겨있다.


"연대(連帶)로 나아가는 길목에서"
9와 숫자들 싱글 '싱가포르' TEASER

 앞선 트랙들이 고독에서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을 위한 메시지로서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후의 트랙은 연대로 나아가는 어떤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고독으로의 수렴에서 벗어나 연대를 향해 발산하려는 화자는 과거에 작별을 고한다. 진 꽃은 언젠가 다시 피어오르지만 꺾인 꽃은 그럴 수 없다. 고독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려고만 하다간 진보는 오지 않는다. 꽃이 지고, 거센 바람을 마주하고 그것을 견뎌낸 이들만이 아름다운 꽃으로 개화할 수 있는 것이다("드라이 플라워").


 고독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길, 잠시 그 시절을 떠올린다. 미련은 아니다. 한 때 머물렀던 그 시절에 대한 예의일 뿐이다. 고독으로 수렴하던 과거 또한 '나'의 일부이므로("검은 돌"). 그렇기에 "싱가포르" 속 '그녀'의 등장은 특별하다. 발산을 위한 불안한 첫걸음 속에서 만난 그녀는 그저 한 명의 사람이 아니다. 싱가포르라는 하나의 나라, 하나의 세계와도 같다. '몇 년에 한 번을 만나도 여전히 친구일 수 있는' 그녀는 화자가 찾은 진정한 연대의 동반자이다.


 연대의 과정이 마냥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때로는 옆자리를 채워주던 누군가와의 연대의 끈이 끊어지는 일도 있다("사랑했던 경우에"). 지쳐 쓰러지고 싶을 때도 있다. 분노와 허탈함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몸 가누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애써 마음을 다스려 본다("평정심"). 하지만 음반의 마지막에서 화자는 깨달음을 얻는다. 고독과 연대, 이별과 감정의 혼란을 반복하며 얻게 된 깨달음이란 '상처가 성숙을 남긴다'는 것. 때문에 "이별 중독"은 슬프기보단 담담하다. 노래가 끝나고 피아노와 기타만이 남았을 때, 무한으로 발산하는 희망이 아른거린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노랫말로 수렴한 음악은 희망으로 발산한다"

 <수렴과 발산>은 노랫말의 힘이 여실히 드러나는 음반이다. 담백하게 진행되는 연주는 노랫말이 나아갈 길을 놓는다. 그 위를 별도의 기계적 효과를 입히지 않은 송재경의 보컬이 타고 흐른다. 밴드가 온전히 노랫말이라는 한 지점을 향해 수렴하는 순간이다. 9와 숫자들은 조심스럽다. 감정의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지 않고, 먼발치에서 그것을 관찰한다.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밀어붙이지 않는다. 다만 속삭일 뿐이다. 수렴에서 발산으로 나아갈 것인가는 결국 우리의 몫이다. 그러나 서투른 발걸음을 한 발짝이라도 내딛는다면 손 내밀어 줄 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싱가포르"의 '그녀' 혹은 "다른 수업" 속의 '너'가 우리에게도 분명 있으리란 것을, 9와 숫자들은 노래한다.


4.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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