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원이요? 꼭 해야 하나요?” 대체 무슨 상황인지 나는 의아했다. 지금까지 단호하게만 말씀하셨던 선생님은 “괜찮을텐데 며칠만 경과를 지켜보자”며 처음으로 애매하게 대답했다. 잠시 집으로 돌아가 입원에 필요한 몇가지 물품을 챙겨왔다. 남편과 떨어지는게 싫었지만 코로나 시절이라 보호자 없이 입원했다. 산부인과 병원 1층에서 남편은 별일 아닐거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모든 상황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이때까지만해도 별 생각이 없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6인실 병실로 따라 들어갔다. 환복을 하고 두꺼운 수액 바늘을 왼쪽 팔에 맞았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이제서야 하나둘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짜꿍이가 어떻게 되지는 않을까,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언제까지 입원해 있어야 하나, 곧 추석인데 양가 부모님을 뵙지 못하는 건 어쩌지, 걱정에 애를 태웠다.
낮에는 그럭저럭 지냈는데 역시나 밤이 되니 안 좋은 생각이 늘어났다. 뜬눈으로 밤을 샜다. 잠을 거의 못 잔 나는 다음날 기분이 들뜨는 것을 느꼈고 말이 많아졌다. 엄마와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해서 1시간이 넘게 떠들며 끊지 않으려 했다. 오늘은 꼭 자야한다며 취침 전 정신과 추가약을 먹었다. 약을 먹었는데도 정신이 더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임신으로 힘들었던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불안한 생각이 꼬리의 꼬리를 물며 늘어졌다. 믿고 의지해야 할 남편도 없어 더욱 두려운 마음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극도의 불안감이 솟구쳤다. 한 번 흐른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터져 나왔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안절부절.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올라오고 있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정이 다 될 무렵, 남편에게 전화했다. 긴 신호음만 있을 뿐 받지를 않았다. 슬픈 눈물은 간절함으로 바뀌었다. “제발 받아줘. 제발 부탁이야.” 4차례나 반복된 발신에도 반응 없던 전화기가 울렸다. 씻고 있어서 못 받았다는 남편의 음성이었다.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호소했다. 남편을 만나자마자 지체 없이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동도 트지 않은 새벽 2시경, 응급실에 도착했다. “임신 30주에 피비침이 있어 타 병원에 입원했는데 경조가 올라와서 정신과 진료를 받고 싶다. 이 병원에 다니고 있는 환자고 응급상황 시에 교수님이 바로 오라고 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최대한 침착하게 진술하려고 했다. 내가 의도한 대로 의료진에게 전달이 잘되지 않은 것일까. 응급의학과 의사와 대화를 나눌 때만 해도 기다리면 되는 줄 알았다. 의료진이 계속 들어와 문진을 하고 불필요한 산과적인 진료를 받았다. 가뜩이나 불안한 내 마음에 짜증과 분노가 뒤섞여졌다. 정신질환자가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자 한 게 이렇게 힘든 일인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응급실 도착 3시간이 넘어서야 정신건강의학과 당직 전공의와 마주했다.
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너무 많아 매우 빠른 속도로 말하고 있었다. 말하는 것보다 생각들이 더 빠르게 비집고 나와서 펜으로 종이에 그것들을 마구 쓰기도 했다. 정신과 진료를 원한다고 수차례 말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은 정확한 이유를 따져 물었다. 이미 의료진에 대해 불신이 가득했기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내가 이런 취급을 받기까지 왜 이렇게 늦게 왔는지에 대해서도 집요하게 캐물었다. 의사는 나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내 이야기를 차분히 다 들어줬다. 잠이 오지 않을 때 먹을 추가약을 받고서 응급실을 나왔다.
피곤한 남편을 대신해 언니와 함께 호텔에 머물렀다. 정신 상태만큼이나 신체도 지쳐있었다. 치골과 꼬리뼈, 무릎도 아프고 양팔에는 주삿바늘로 인해 피멍이 크게 들었다. 낮에는 안정을 취한 듯했지만 밤이 되자 불안감이 다시금 공포로 변모했다. 호텔 안이 아닌 마치 내가 탈출해야 할 공간이라 느껴졌고 먹어야 할 약을 화장실 변기에 버렸다.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이었다. 약을 먹지 않은 나는 점점 불안과 초조한 기분이 극에 달했고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예민해지기까지 했다. 누군가 내 몸을 스치기라도 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몹시 화를 냈다. 경조증을 넘어 심각한 조증으로 가고 있는 듯했다.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는 비논리적인 말들,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채 어수선한 말의 내용들, 상대방의 말은 듣지 않고 끊임없이 혼자만 말하는 등 평소와 전혀 다른 나였다. 사람을 적대시하는 눈빛으로 가족들을 향한 날서고 분한 마음을 표출했다. 망상과 더불어 환청까지 들리는 단계로 질주하고 있었다. 119 구급 대원의 출동에도 격앙된 마음은 쉽게 가라앉혀지지 않았다.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자꾸만 거슬리는 것들이 눈에 들어와 사람들과 끝을 모르는 실랑이를 벌였다. 왜 그런 생각이 들고 행동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나는 몹시 정신이 병들고 피로했다. 경찰까지 왔고 다행히 그는 바쁜 와중에도 횡설수설한 내 말에 끝까지 반응해 줬다. 임신 몇 주인지, 태명은 무엇인지 물으며 나를 따뜻하게 대해줬다.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119 대원과 경찰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응급실에 다시 갈 수 있었다.
눈을 떴다. 얼마나 자고 일어났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내 옆에 있어야 할 남편이 없었다. 당황스러워서 간호사한테 남편을 불러달라고 이야기했다. 단지 그뿐인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 격리실로 들이닥쳤다. 나는 분명 예의 바르게 말했는데 내 몸은 그들에 의해 붕 떠서 침대에 내려졌고 결박을 당했다. 풀어달라고 애원하며 소리쳤다. 내가 실제로 했다고 생각한 말과 격리실 CCTV로 비춰진 화면 속 행동은 사뭇 달랐다. 의료진에게 침을 뱉고 수액걸이대를 집어던졌다. 쉽사리 조절되지 않는 충동이고 공격적인 행동이었다. 남편의 동의하에 나는 즉시 제압 당했다. 나는 악착같이 결박을 풀고 의료진은 힘들여 내 손발을 묶고의 반복이었다. 거듭된 약 거부에 급기야 목을 낫게 해주는 약이라고 속아서 먹기도 했다. 삼일 내내 잠도 안 자고 떠들었던 나는 목이 상당히 쉬었고 따가웠다. 쿠에타핀에서 자이프렉사(올란자핀)로 어쩔 수 없이 약을 바꾸고 나서야 어느 정도 진정이 됐다. 어떤 간호사가 입원을 거절하는 내게 병원 8층으로 가서 교수님과 면담을 하자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올라갔다. 81병동.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철문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