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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마람 Mar 08. 2024

임신의 기쁨과 슬픔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쉽게 이해되는 이 짧은 문장을 나는 늘 잊고 살아간다. 2021년 한 해 동안은 유독 그러했다. 누구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뜻대로만 시간이 지나가기를 마음속으로 그렸다. 앞으로 경험하게 될 열 달은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리라 믿었다. 산과와 정신건강적으로도 별일 없이 순조롭게 흘러가길 바랐다. 혹시 문제가 생긴다 해도 ‘별거 아니네’ 하며 임신 과정 중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아 그랬었나?’ 기억조차 나지 않기를 상상했다.


산부인과는 참 묘하다. 으레 병원이라 하면 의사가 무슨 말을 할까, 오늘은 또 어떤 안 좋은 이야기를 들을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산부인과는 다르다. 특히나 임신으로 인한 방문이라면 더욱 특별해진다. 매번 기대되고 자주 가고 싶어지게 만든다. 임신을 알고 어느 날, 남편에게 말했다. “산부인과는 진짜 신기해. 매일매일 가고 싶어. 다음 진료까지 어찌 기다리지? (장난스러운 말투로) 내 배가 투명해져서 짜꿍이 상태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초음파 사진 보는 시간이 요즘 제일 신나”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은 입덧과 불러오는 배로 인해 으스러질 듯 아픈 두덩뼈에도 견디고 참을 수 있게 해준 힘이었다. 짜꿍이가 건강하게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고 설레는 심장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을 잘 유지하는데도 큰 원동력이 되었다.


내가 인상 깊게 느꼈던 건 태동이다. 18주쯤에 아랫배에서 살짝 툭툭 치는 것으로 존재감을 알렸던 짜꿍이는 19주 4일에 남편도 느낄 정도로 제법 세게 찼다. 우리는 서로 놀라 한참이나 깔깔거리며 웃었다. 아직도 한껏 상기된 남편의 얼굴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임산부 몸에 도움이 된다는 음식과 영양제를 챙겨 먹어 임신 전보다 몸 상태가 훨씬 가벼웠다. 필라테스로 운동도 하며 짜꿍이와 교감을 나누기도 했다. 남편의 온전한 애정을 받아 체중도 하루하루 내 생애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매라며 나를 행복한 임산부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삶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인생에서 오직 기쁨과 즐거움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슬픔과 고단함의 감정까지 고스란히 다 느끼게 될 줄 우리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기분장애와 더불어 불안도 안고 사는 나에게는 분명 쉽지 않은 일들이었다.


임신 6주 차, 태아의 쿵쿵거리는 작은 심박음과 함께 의사의 야속한 소리를 들었다. 유산 가능성이었다. 아기집은 잘 보였지만 태아의 모양이 조금은 기이했다. 태아 주변으로 서 너 갈래 이상한 선들이 뻗어있었다. 얼핏 거미줄에 둘러싸여 있는 형태로 보였다. 의사의 심각한 표정과 목소리에 내 떨리는 심장소리가 밖으로까지 들리는 듯했다. 의사로서 해야 할 말과 행동이었지만 심박음도 듣기 전에 “안타깝습니다만…”이라고 말해서 괜히 서운하게 들렸다. 남편과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남편은 아기보다 내가 더 걱정된다고 했다. 나는 눈시울이 붉어져 목이 자꾸 메고 따끔거렸다. 내가 조울증 때문에 약을 먹고 있어서 아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아니라고, 우리 짜꿍이는 꼭 건강하게 이겨낼 거라며 서로를 달랬다.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매주 병원을 찾았다. 원인 모를 선들이 여전히 있었지만 짜꿍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심장도 더 강하고 규칙적으로 뛰었다. 9주에 드디어 짜꿍이를 괴롭혔을 것만 같은 선들은 완전히 사라졌고 머리와 몸이 구분되어 젤리곰으로 우리를 반겼다.


16주에는 산전 기형아 검사를 하러 산부인과에 갔다. 결과는 몇 주 후에 알려준다고 했는데 다운증후군 고위험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또 일어나고야 말았다. 확률검사라지만 홀배수체 염색체 검사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걱정만 가득했다. 추가 검사는 양수검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간단한 니프티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간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괜찮다’라는 단어밖에 없었다. 니프티 또한 정확도가 99%라 1%의 좋지 않은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니프티 검사만으로도 안심해도 될까요?” 내 긴장한 물음에 의사선생님은 나를 다독여줬다. 결과적으로 짜꿍이는 정말 건강하게 태어났다. 임신기간 내내 안정기란 없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다.


임신을 하고 정신과적으로는 불면증에 힘겨웠다. 배가 나오고 골반이 벌어지면서 치골과 꼬리뼈가 자는 시간에도 너무 아팠다. 갈수록 통증이 심해지니까 밤에 잘 때 몸을 뒤척였다. 이런 움직임이 짜꿍이가 뱃속에서 지내는데 힘들지는 않을까 싶었다. 방광도 예민해졌다. 새벽마다 화장실에 잦게 왔다 갔다 했고 숙면을 취할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수면 부족으로 이어졌다. 잠을 잘 못 자면 불안함이 몰려오고 기분이 살짝 들뜨는 경조증이 올라온다. 임산부의 감정은 태아도 똑같이 느낀다고 들었다. 수면시간이 줄어들고 기분이 들뜨는 현상이 지속되자 혹여 지금 짜꿍이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명확한 답을 모르는 불확실한 사실이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계속 저리는 느낌이 났다. 안절부절못하고 집안을 서성였다. 남편과 아파트를 산책하고 기분을 가라앉히는, 수면에 좋은 영상을 보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기도 했다. 많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를 때마다 대화를 나눴다. 경조증에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지만 조증으로 가지 않게 하는 데는 나름 괜찮은 방법이었다. 교수님 상담을 통해 쿠에타핀 용량을 늘렸다. 쿠에타핀 이외에 다른 정신과 약물은 처방받을 수 없었다. 임신한 상태에서는 부작용의 위험이 있어 약물을 두 가지 이상 처방하지 않는다고 한다.


임신 후기에 접어들자 유달리 시간이 더디게 가는 느낌이 들었다. 임신 초중기는 여러 이벤트가 있어 병원에 곧잘 갔다. 이제는 비교적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한 달에 한 번 오라고 했다. 거의 5주가 다 되어 짜꿍이를 만났다. 태아의 얼굴 윤곽과 신체의 주요 기능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입체초음파를 마치고 진료실로 향했다. 선생님은 긍정적으로 말씀해 주셨다. 태반도 정상이고 태아도 머리를 아래쪽으로 향해 위치가 적당하며 자궁경부 길이도 괜찮다고 했다. 머리도 주수보다 작아서 자연분만에 대한 희망적인 말을 덧붙였다. 이제 곧 추석 연휴라 양가 부모님께 얼른 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다만 나는 어제 께름직한 느낌을 말했고 선생님은 바로 확인해야 한다고 하셨다. 30주에 절대 보여서는 안 될 피비침이 있었다. 지금 당장 입원하라며 갑작스러운 권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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