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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C매거진/12월] 슬기로운 설날 생활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364일이 지나가면 어김없이 우리 앞에 오는 설날. 이런 설날에 대하여 크고 작은 지식을 알게 된다면 더욱 뜻 깊고 새롭게 명절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매번 같은 풍경으로 다가오는 설날을 조금 더 슬기롭게 보낼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물이든 음식이든 더 많이 알수록 애정이 생기는 법이지요. 설날하면 빼 놓을 수 없는 떡국에도 몇 가지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떡국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새롭게 맞이한 새해 첫날에 먹는 음식입니다. 그만큼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안 좋았던 일을 깨끗하게 잊자는 의미로 흰 색의 육수에 새하얀 떡을 넣어 끓인 떡국을 먹는 것이지요. 


떡국에 들어가는 동글동글한 떡 모양을 자세히 보다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않나요? 바로 ‘엽전’입니다. 떡국 한 그릇에는 엽전을 닮은 떡이 소복하게 쌓여있지요. 우리 조상들은 이런 떡국을 먹으며 집안에 재물이 풍요롭게 불어나길 바랐습니다. 


마지막으로 떡국에 사용하는 가래떡은 무병장수의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떡을 뽑을 때 끊지 않고 길게 뽑을수록 그만큼 오래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흔히 떡국을 먹어야 진짜로 한 살을 더 먹는다고 하죠. 그런데 이렇게 길게 뽑은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은 장수까지 기원해주니 그야말로 떡국 한 그릇에는 우리네 인생 자체를 응원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진하게 깃들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떡국 이외에도 설날 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대표적인 명절 음식들이 있지요. 가장 먼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갈비찜’부터 살펴볼까요. 예로부터 보양식이자 명절 음식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 온 갈비찜을 만드는 데에는 몇 가지 요소가 꼭 들어가야 합니다. 갈비찜에 들어가는 수많은 재료, 그에 따른 복잡하고 수고로운 손질 과정,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 푹 고아내야 하는 정성까지. 이 모든 요소가 커다란 냄비 안에서 균형 있게 어우러져야 하지요. 


그만큼 갈비찜은 만들기 어렵지만, 푹 고아진 갈빗살과 각종 채소에 달콤한 양념이 배어 밥도둑이 따로 없는 마성의 맛을 자랑합니다. 또한 대추, 인삼, 표고버섯, 갈비 등 영양소가 풍부한 재료가 듬뿍 들어가기 때문에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이나 손님 초대상에서만 귀하게 볼 수 있던 잔치 음식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다채로운 명절 상에서 언제나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삼색나물’입니다. 앞서 소개한 갈비찜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명절이면 꼭 챙기게 되는 삼색나물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뿌리채소인 도라지는 조상, 줄기채소인 고사리는 현세를 살아가는 우리, 잎채소인 시금치는 후손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 나물을 한 데 모아놓음으로서 삼대가 어우러져 대대로 번영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삼색나물의 의미를 알고 나면 취향에 따라 특정나물로만 향하던 젓가락이 세 나물 모두 골고루 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 번째는, 명절 소식을 누구보다 먼저 알려주는 ‘전’입니다. 각 집마다 전을 부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공기 속에 풍기면 비로소 명절이 왔음을 느낄 수 있지요. 명절마다 동태전, 호박전, 고추전, 꼬치전, 동그랑땡 등 각 지역이나 풍습에 따라 가지각색의 전이 등장합니다. 예로부터 한국 전통 요리 중에는 기름이 다량으로 들어가는 요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전은 드물게 기름과 계란을 많이 쓰는 요리 중 하나였는데요. 특히 조선시대에는 기름과 밀가루의 가격이 높았으며 구하기 어려운 식재료였다고 합니다. 밀가루 풀을 사용하는 것이 고급 조리법으로 취급될 정도였으니깐요. 이렇듯 평소에 접하기 어려운 식재료로 만든 ‘전’은 명절이나 좋은 날에만 먹는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전을 부칠 때 손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악명 높은 음식으로 자리 잡은 요즘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죠? 하지만 전은 수고로운 손질만 마쳐 놓으면 조리법이 비교적 단순한 편에 속합니다. 그렇기에 집마다 고사리 같은 손이라도 하나 둘 씩 손길을 보태면, 준비하는 이의 고단함이 녹아내리는 따스함도 맛볼 수 있었지요.     



마지막 주인공은 잔칫상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잡채’입니다. 잡채는 여러 가지 채소, 고기, 당면에 양념을 한 뒤에 잘 무쳐서 국수처럼 먹는 한국 전통 음식이지요.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긴 면은 장수를 상징한다고 여겼습니다. 여러 가지 재료가 한 데 어우러져 입 안에서 풍성한 맛을 내는 것은 물론, 먹을수록 오래 산다는 의미까지 담고 있으니 좋은 날이면 어찌 잡채를 빼놓을 수 있었을까요. 



이외에도 명절 간식으로는 최근 ‘할매니얼 푸드’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약과’가 있습니다. 유밀과의 종류 중 하나인 약과에는 ‘약이 되는 과자’라는 뜻이 담겨 있는데요. 밀가루에 참기름, 꿀, 술을 넣고 반죽해 튀긴 약과는 귀족층에서 널리 유행한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명절에 평소보다 과식을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한 ‘식혜’가 있습니다. 식혜의 엿기름은 더부룩한 속을 풀어주는 효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달콤하고 맛있는 음료가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숨을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똑똑한 전통 음식 중 하나이지요.      


보통 명절을 지나고 나면 우리의 고민은 다음의 두 가지로 좁혀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번째는 냉장고 속에 수북하게 남은 명절 음식과 두 번째로는 고칼로리의 명절 음식을 마음껏 먹고 난 뒤에 돌아오는 늘어난 몸무게 말이지요. 그렇다고 매번 돌아오는 명절을 피할 수도 없는 법입니다. 이 두 가지 고민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남은 명절 음식을 색다르게 즐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새로운 양념’과 ‘형태의 변화’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유념하여 첫 번째로 ‘잡채’부터 출발해볼까요. 다양한 재료가 들어있어 상하기 쉬운 잡채는 부지런히 먹어야 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김말이, 라이스페이퍼, 춘권, 메밀전병 등 다양한 겉재료에 남은 잡채를 넣고 돌돌 말아 봅니다. 잡채를 후루룩 먹는 것이 아니라 바삭하게 한 입씩 끊어 먹는 재미가 전혀 다른 요리를 먹는 느낌을 줍니다. 이외에도 매콤한 양념을 더한 잡채밥이나, 떡국에 사용하고 남은 떡을 넣어 쫄깃한 식감을 추가한 떡잡채도 별미입니다. 



두 번째는, 의외로 다양한 요리로 변신할 수 있는 하얀 도화지 같은 ‘전’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각종 전을 넣고 간장, 고춧가루로 양념한 찌개를 만드는 것이지요. 전은 기름이 많이 들어가 자칫 느끼할 수 있기 때문에 칼칼하게 청양고추나 고춧가루를 추가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또한 전은 오래 끓이면 풀어질 수 있으므로 조리 가장 마지막 순서에 넣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외에도 매콤 달콤한 중국풍 소스 등 각종 양념을 넣고 전 조림으로 만들면 밥도둑이 따로 반찬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선명하고 고운 색감을 지녀 화려한 요리로 변신할 수 있는 ‘삼색나물’입니다. 아주 쉽게는 나물 비빔밥, 나물 김밥, 나물 비빔국수 등으로 응용할 수 있지요. 조금 더 품을 들일 수 있다면 ‘나물밥전’에 도전해보세요. 나물과 씻은 김치를 잘게 썰어서 밥과 함께 뭉친 뒤에 노릇하게 구워내는 되는데요. 청양고추와 양파를 송송 썰어 넣은 간장 양념장에 콕 찍어 먹으면 별미 요리가 됩니다.     


다이어터들의 최대 위기 중 하나가 명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지요. 그만큼 명절 음식은 높은 칼로리를 자랑합니다. 떡국도 생각보다 높은 열량을 갖고 있고, 기름에 부쳐진 전들이야 두말할 것이 없지요. 이런 명절 음식을 맛있게 요리하면서도 조금 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팁이 있습니다.


떡국은 쌀을 단단하게 뭉친 떡을 넣어 칼로리도 높지만, 국물음식이라 나트륨 함량도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저칼로리로 조리하기 위해서는 가래떡을 뽑을 때 멥쌀가루에 쑥가루를 20% 첨가해보세요. 국물은 고기 육수 대신에 멸치 육수로 대체하면 담백하고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달콤한 양념의 갈비찜을 만들 때에는 설탕 대신에 천연의 단맛을 내는 양파, 배를 풍성하게 넣어줍니다. 인공 감미료를 사용 한다면 기왕이면 저칼로리의 설탕 대체 감미료를 사용하는 것이 좋겠지요. 고기 부위는 조리하기 전에 기름을 쫙 빼거나 지방 부위가 많은 부분은 제거하여 되도록 살코기만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고기를 볶을 경우에는 센 불로 단시간에 볶아야 기름 흡수가 적습니다. 


잡채는 당면 대신에 채소나 우엉 잡채로 대신하면 칼로리를 대폭 낮출 수 있습니다. 잡채 재료를 볶을 때는 물을 넣고 볶다가 마지막에 한 번만 기름을 넣어 볶으세요. 재료들이 기름을 흠뻑 흡수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나물을 무칠 때도 적용되는데요. 나물은 기름에 볶지 말고 물로 살짝 데쳐서 무치거나, 볶는 경우에는 물로 볶다가 마지막에 참기름을 살짝 넣으면 칼로리를 낮출 수 있습니다. 풍성하게 지내는 명절인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우리 몸도 가볍게 유지하면서 즐겁게 명절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몸도 마음도 가볍게 시작하는 2023년 

새롭게 시작하는 이 맘 때면 ‘비움의 미학’이란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지나간 것은 비워내야 또 새로운 것들이 우리 곁에 올 수 있겠지요. 하얀색 떡국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에도 바로 이 ‘비움’이 포함되어있습니다. 하얗게 비워낸 몸과 마음에 행복한 일들이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것이지요. 앞서 소개한 ‘슬기롭게 설날을 보내는 방법’들이 차분하게 비워내는 한 해의 시작을 여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본 글은 SPC매거진에 정기 연재중인 12월 칼럼입니다. 전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https://www.spcmagazine.com/%ec%8a%ac%ea%b8%b0%eb%a1%9c%ec%9a%b4-%ec%84%a4%eb%82%a0-%ec%83%9d%ed%99%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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